영국·독일 등 재외투표 ‘열기’
중 베이징 투표율 82.3% 집계
20대 때보다 10.7%P 높아져

“총선 때보다 참여자 30% 많아진 듯…나라 위한 투표 열망 실현”
제21대 대통령 선거 재외투표가 시작된 지난 20일 오전 8시(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의 유학생 강모씨(30)가 주노르웨이 한국대사관에 들어섰다. 대사관 직원들이 “노르웨이 1호 재외국민 투표자”라며 박수로 맞이했다. 강씨는 “불안을 빨리 해소하고 싶었다”며 “투표를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취재에 응한 ‘재외국민’들은 투표소가 있는 곳까지 길게는 차로 5시간 넘는 거리를 이동해 한 표를 던졌다고 했다. 그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12·3 불법계엄 사태로 인한 혼란이 하루빨리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재외국민들은 이번 대선 투표 열기가 지난 대선 때보다 높다고 말했다. 영국 셰필드의 유학생 정모씨(31)는 버스로 왕복 8시간 거리인 런던까지 다녀왔다. 정씨는 “12·3 불법계엄 사태 소식을 태국인 친구에게 처음 전해들었는데 ‘한국은 당연히 민주국가라서 이렇게 극단적인 일이 생길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었다”며 “부끄러운 마음이 컸고, 더 잘못되기 전에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조모씨(29)도 “지난 24일까지 계속 비가 와서 투표장을 찾는 시민들이 적을까 걱정했다”며 “그런데도 꾸준히 투표장을 찾아와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주중국 한국대사관은 재외국민 투표기간 베이징에 등록된 유권자 4218명 가운데 3471명이 투표해 투표율이 82.3%로 집계됐다고 25일 전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베이징 등록 교민 투표율 71.6%보다 10.7%포인트 높아졌다.
독일 뮌헨 한인회는 지난 24일 단체버스를 빌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투표장으로 향했다. 버스 비용은 주프랑크푸르트 한국 총영사관이 부담했다. 뮌헨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는 왕복 10시간, 휴식 시간까지 포함해 총 13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지만 열기는 뜨거웠다고 한다. 지난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단체버스 이용 신청자가 50명 정도였는데, 올해는 90명까지 늘었다.
이 버스를 이용한 장모씨(47)는 “지난 총선 때보다 투표자가 30% 이상 많아졌다는 느낌”이라며 “탄핵이 인용되기 전까지 잠도 잘 못잤다. 상식을 벗어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투표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투표한 재외국민들은 ‘이날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사는 박모씨(29)는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던 지난달 4일 친구와 함께 투표하기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비상계엄 사태를 뉴스로 봤을 때 ‘나라를 잃은 기분’이었다. 한국에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부터 들었다”며 “사태가 하루빨리 정리되어야 한다는 바람에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선거에 참여한 윤지만씨(46)는 “독일은 철저한 단죄와 숙청으로 ‘나치는 안 된다’는 교훈을 명확히 했다”며 “한국에서는 아직도 내란을 일으킨 전직 대통령이 활개치고 있는데, 단죄를 위해 투표 날을 기다렸다”고 했다.
재외국민 투표가 진행되는 상황인데도 일부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단일화’가 거론되고 있는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조모씨는 “해외에서 비행기를 타고 투표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투표 이후 단일화가 되면 이런 시민들이 투표한 후보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며 “단일화 논의가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