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급증하는 가계부채, 특히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잠재우기 위해 ‘6·27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전 금융권에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가능 금액을 6억 원으로 일괄 적용하고 우회 대출로를 차단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가계대출 총량 감축이라는 정책 때문에 금융 약자들이 의도치 않게 음지로 내몰리는 풍선효과가 없는지 따져봐야 할 때다.
정부는 당초 계획보다 하반기 총량 목표를 기존의 50%로 감축했고 카드론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이로 인해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난 서민들은 대부업체로, 심지어 불법 사금융 시장을 찾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6·27 대책’ 직후 대부업 신용대출 신청 건수는 전월 대비 85.8% 급증했으나 승인율은 고작 12.8%에 불과했다. 10명 중 9명이 문전박대 당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부 지원 대출” “신용불량자 가능”과 같은 현란한 문구로 유혹하는 불법 금융 광고의 덫에 걸려들었다. 대부업협회조차 두 달간 불법 광고 집중 단속에 나설 정도로 상황은 이미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금융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의 삶을 이롭게 하는 데 있다. 숫자 중심의 규제가 불가피하다면 사람을 살리는 설계가 동반돼야 한다.
그 첫걸음은 바로 ‘회복력 기반 보증 시스템’의 도입이다. 과거에 연체 이력이 있더라도 최근 6개월간 임대료나 공공요금을 성실히 납부한 이들에게는 공공과 민간이 공동으로 보증을 차등 적용해 제도권 복귀의 문을 활짝 열어줘야 한다.
청년의 주거 자금과 자영업자의 생계 자금 또한 마찬가지다. 대출 목적과 차주의 생애 주기, 납세·고용·상환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맞춤형 총부채상환비율(DSR)’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신용등급이라는 과거 중심의 지표 대신 ‘회복 점수’를 도입해야 한다. 과거에 무너졌더라도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의 문이 열려야 한다.
이제 서민금융 정책은 소극적 행정이 아니라 적극 행정으로서의 포용적 금융과 사후 관리로서의 채무자 보호, 신용 회복, 회복 지원 등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가 준비 중인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장기 소액 연체자 지원 제도 같은 한계 채무자에 대한 빚 탕감 정책도 동시에 실시돼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현재의 DSR은 가계부채 억제라는 단기적 목표에는 어느 정도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서민 경제의 숨통을 점점 더 조여오고 있다. 금융정책은 숫자 너머의 인간을 향해야 한다. 정부가 내세운 서민·자영업 재기 지원과 생산적 금융, 가계부채 관리라는 3대 틀이 구호가 아니라면 DSR 제도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우리는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세부적인 설계와 실행이 부실하면 그 본래의 의미를 잃기 마련이다. 금융을 놓고 보면 치밀한 정부 정책의 설계와 공정한 금융회사의 실천, 금융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리고 금융 설계는 반드시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둬야 한다. 그래야만 포용과 성장, 그리고 신뢰가 공존하는 금융의 길이 비로소 열릴 수 있다.
지금 국민들은 묻고 있다. 금융이 진정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도구가 되기 위한 정책 전환은 언제쯤 시작될 것인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