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진의 계정공유] 쏟아지는 정치 영화 "팬심으로 버티기엔 러닝타임이 길다"

2025-05-30

[비즈한국] “저, XX새끼.” 영화관 안에서 나직하지만, 뚜렷하게 들린 발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나온 장면이었다. 그 발언이 분출구였을까. 그 전까지 소곤소곤하던 음성들이 이후론 시시때때로 격렬한 반응으로 쏟아져 나왔다. 영화가 끝난 후엔 박수와 함성이 함께 터졌다.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상영하는 영화관의 풍경이었다.

“어우, 그만 좀 처 나와라.” 이건 또 다른 영화관의 풍경. 스크린의 자료 화면에서 전 대통령이 연속해서 비치자 어느 좌석에서 단전에서 끌어올린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찬가지로 몇몇 클라이맥스 장면에선 지지의 목소리와 응원이 터져 나왔고, 영화가 끝난 후 박수가 쏟아졌다. ‘빛의 혁명, 민주주의를 지키다’를 상영하는 영화관의 풍경이었다.

영화관에 팬덤들이 많아졌다. 공연 실황 영화를 보러 온 K-팝 팬덤들이냐고? 물론 몇 년 전부터 K-팝 팬덤들의 극장 지분이 상당해진 건 맞는데, 요즘 극장가의 뜨거운 팬덤은 정치 팬덤이다. 지난 4~5월에만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여러 편 개봉했다. 4월 16일 개봉한 ‘하보우만(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의 약속’을 시작으로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 ‘다시 만날, 조국’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가 개봉했고, ‘빛의 혁명, 민주주의를 지키다’가 5월 30일 개봉했다. 제목만 들어도 어떤 진영의 영화인지 확연히 알 수 있을 만큼 메시지가 노골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개봉 성적도 나쁘지 않다. 대부분 상업영화보다 제작비가 낮고, 단기간 내 개봉하는 저예산 다큐멘터리 영화인 까닭이다. 보통 국내 현실에서 독립예술영화의 기본 성공 수치가 1만 관객이고, 5만 관객이면 성공으로 본다. 그런데 지금 개봉한 정치 다큐 영화들은 대부분 1만 관객을 넘겼다. 5월 29일 기준으로 ‘하보우만의 약속’은 2만 명에 육박했고, ‘다시 만날, 조국’도 3만 관객 가까이 동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직접 관람하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킨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는? 8일 만에 3만 1911명이 찾았다. 특히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은 6만 4206명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개봉해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화제가 됐던 독립예술영화 ‘장손’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정치 관련 다큐 영화가 극장가의 인기 상품(?)이 된 기폭제는 작년 7월 개봉한 ‘건국전쟁’이다. 물론 이전에도 인기를 끈 정치 관련 다큐 영화는 있었다. 185만 명으로 정치 관련 다큐 영화 1위를 기록한 ‘노무현입니다’를 비롯해 여러 편의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영화가 있었고, 33만 관객을 모은 ‘그대가 조국’,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을 다룬 ‘공범자들’이 26만 관객이 들었고, 10만 이상 관객을 기록한 ‘문재인입니다’와 ‘길 위에 김대중’이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인기를 끈 정치 관련 다큐 영화들은 진보 진영 성향이 주를 이루었다. 보수 진영 성향의 영화는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건국전쟁’이 주요 여당 정치인과 대형 교회 교인들의 단체 관람으로 불을 지피더니 무려 117만 명으로 정치 관련 다큐 영화 2위에 오른 것. 이후 ‘박정희: 경제대국을 꿈꾼 남자’와 박정희 대통령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 등 보수 진영 영화들이 잇따라 선보였다.

또 하나의 기폭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2024년 12월 3일의 밤을 지켜본 국민들이 두려움과 의아함에 떨었고, 이는 국민들을 다시 광장으로 불러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곧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문제적 다큐 영화 ‘퍼스트 레이디’가 12월 12일 개봉해 8만 관객이 찾으며 뜨거운 감자가 되었고, 이후 질세라 보수 진영에서 올해 2월 27일 ‘힘내라 대한민국’을 선보여 7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결정되고 일찌감치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이준석 개혁신당 전 대표를 다룬 ‘준스톤 이어원’도 3월 개봉했다(영화 제작 자체는 대선 출마 선언 훨씬 이전부터 준비했다고).

그러나 정치 관련 영화들의 뜨거운 제작 열기와 영화 성적과 별개로, 만듦새로만 평가했을 때 좋은 평가를 받는 영화는 많지 않다. 물론 타깃이 확실한 만큼 각각의 영화들의 실관람객 평점은 좋다. 아니, 지나치게 좋다. 당연하다. 팬이 어떻게 추종하는 대상을 깔 수 있겠나. K-팝 팬덤이 좋아하는 스타를 좇아 공연 실황 영화를 보는 것처럼, 좌우 정치 진영 팬덤 역시 자신들이 지지하는 진영 논리의 영화들을 보러 간다. 그러니 인색한 평점을 줄 리 만무하다. 영화를 보며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관객들을 보면 싱어롱 상영회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영화적 만듦새보단 정치적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에 집중하거나 선전용 영화가 많은지라 평론가들의 관람평도 많지 않은 편. 그래서 ‘준스톤 이어원’에 ‘어느 쪽이든 정치인 팬덤 다큐의 종말을 바라게 된다’라고 남긴 김경수 영화평론가의 평이 인상적이다. 

아직도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누굴 뽑을지 결심이 서지 않은 중도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최근의 정치 다큐 영화들은 인상적이진 않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직관’으로 이슈를 일으킨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의 만듦새는, 예상은 했지만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논리와 근거의 빈약은 둘째 치고, 그래도 한때 방송국 PD로 이름을 날렸던 이영돈 PD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들었으면 적어도 제대로 된 서사의 흐름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림’이라곤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모호한 앵글이 주를 이룰 땐 어안이 벙벙했고, ‘젊은’을 ‘젏은’이라 쓴 문구가 화면에 대문짝 만하게 나올 땐 실소만 나왔다.

6월 2일 개봉 예정인 오컬트 정치 스릴러 영화 ‘신명’ 또한 아직 보진 못했지만 우려의 시선이 든다. 전 대통령과 그 부인을 모티프로 한 이 영화는 다큐가 아닌 픽션이지만, 예고편을 보면 세련된 패러디가 아닌 놀라울 만큼 촌스러운 직유법으로 점철돼 있다. 픽션의 탈을 쓴 논픽션이라 하더라도 오컬트라는 장르를 가져온 만큼 장르적 재미는 담보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수 있을지 큰 의문.

정치적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담은 영화가 많아질 순 있다. 특정 팬덤을 타깃으로 하는 만큼 편향적인 시선이 담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저 같은 성향끼리 ‘우쭈쭈, 우리 편 잘한다’에 그칠 거라면, 그건 일종의 자위 행위나 다름없지 않나. 적어도 중도 성향의 관객이라도 끌어당기고 싶다면 객관적이고도 다양한 시선으로 균형 감각을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영화라는 외피를 두른 이상 어느 정도 적절한 만듦새와 보는 재미는 담보해 달라. 그건 같은 편의 관객들도 원하는 바일 거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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