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조선 왕비의 암살극... 소설 '작전명 여우 사냥'

2025-09-02

망해 가는 조선을 살리기 위한 7일간의 사투

가장 은밀하고 치명적인 일본 극우들의 암살극

그날의 전모를 밝히는 풀 스케일 정치 스릴러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훗날 명성황후로 추존되는 중전 민씨가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군인과 특파기자들에 의해 살해된 지 올해로 꼭 130년을 맞는다. 소설 '작전명 여우 사냥'(파람북)은 그해 10월 1일부터 암살 당일까지의 일주일간을 숨 막히는 현장감으로 복원한다. 기자 출신인 작가 권영석이 치밀한 역사적 사실 수집과 복합적인 인물 묘사, 그리고 치열한 사건 전개로 쓴 문제적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명재라는 가상의 캐릭터로 온건 개화파의 수장이었던 민영익의 호위 무사 출신이다. 이명재는 일본 유학 도중인 1894년 갑오 왜란으로 왕과 왕비가 건청궁에 가택 연금되자 급거 귀국해 중전 민씨의 경호 대장을 맡는다. 왕비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 그는 청일 전쟁과 동학 농민 전쟁 직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야욕을 직시하며,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이명재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인물은 실존 인물인 아다치 겐조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특수 부대' 역할을 수행하는 조선 최초이자 유일한 일간지 일본 '한성신보' 사장을 맡고 있다. 일본 극우 정치가인 그는 조선 침략을 부르짖으며 오래전부터 조선어를 공부했으며, 신념형과 출세형이 혼합된 위험한 언론인이다. 이명재의 일본군 철병 전략을 역이용, 중전 민씨 암살을 성공시킬 책략을 입안한다. 실제 역사에서 아다치는 중전 민씨 암살 성공 직후 일본으로 도주한 뒤 일본 정계의 거물로 승승장구한다.

중전 민씨 암살 사건은 일본의 조직적 은폐로 아직까지 전모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최소한 아다치 겐조가 암살 작전을 지휘하는 책임자라는 것이 확인된다. 실제 경복궁으로 쳐들어간 폭도들 가운데 '한성신보' 특파기자들이 대다수였으며, 아다치가 소속된 '구마모토 국권당'이라는 일본 극우 정당 역시 을미사변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졌다.

소설은 주인공 이명재와 그 라이벌 아다치의 치열한 지략 대결과 한성 시내를 연이어 뒤흔드는 초대형 사건들의 연속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한편으로 조선 정계의 주요 인물들, 고종, 흥선 대원군, 안경수, 러시아 공사인 베베르와 왕실 고문 리젠더(프랑스어 명 르장드르)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갑신정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히 생존한 급진 개화파 유길준 내각 서기장 역시 이야기 속에서 자주 나온다. 특히 유길준은 주인공 이명재와 게이오 의숙 동문이자 형님뻘이라는 설정으로, 역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은 당시 개화파 지식인들의 속내를 문학의 힘을 빌려 허심탄회하게 토로하고 있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이자 일주일간의 격변에서 중심을 지키고 있는 인물은 역시 중전 민씨다. 소녀적인 감수성과 뇌물에 대한 탐욕, 날카로운 지성과 무모한 권력욕, 국제 정세 대처 능력과 주술에 대한 무제한적 의존. 한편으로는 수구 기득권의 상징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 개화의 선각자로 착각하는, 실로 복합적인 개성을 갖추었다. 그런 그의 모순적인 성격은 주인공 이명재가 햄릿적으로 갈팡질팡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민씨 그 자신의 운명적 파멸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저자는 중전 민씨의 여러 실정을 비판적으로 조감하는 한편으로, 그간 일방적으로 찬양 또는 우상화의 대상이 되었던 조선 국모의 인물됨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려는 노력을 소설 안에서 지속적으로 기울여, 매력적인 한 인간을 구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값 18,000원.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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