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으로 성장한 중국 CATL과 국내 소재 업계의 협력이 확대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5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에코프로비엠은 지난달 29일 열린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중국 CATL 공급을 위한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코프로비엠 관계자는 “CATL이나 AESC 같은 중국 배터리 셀 업체들이 유럽에 생산 거점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면서 “향후 중국 업체들의 추진 방안을 주시하면서 구체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컨퍼런스콜에서 특정 고객사를 언급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에코프로가 그만큼 CATL와의 협력 관계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헝가리 데브레첸에 위치한 에코프로비엠 유럽 양극재 공장은 연간 최대 10만 8000톤의 생산능력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올 하반기 준공 예정이며 CATL 헝가리 공장과 불과 3㎞ 거리에 있어 입지상 유리하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거리가 가까우면 물류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성능 테스트만 통과할 수 있다면 공급 계약 체결 가능성이 상당할 것”이라며 “CATL을 고객사로 두게 되면 다른 중국 배터리 기업으로의 공급은 순조로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잠재 경쟁사로 꼽히는 벨기에 배터리 소재 기업 유미코어가 최근 실적 부진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CATL은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유럽 메이저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며 유럽 점유율을 2021년 17%에서 2024년 38%로 빠르게 끌어올렸다. CATL 헝가리 공장은 올 하반기 가동 예정이며 연간 생산능력 100GWh(기가와트시)을 갖출 방침이다. 이 회사의 다른 유럽 공장인 독일이나 스페인보다 훨씬 큰 규모인 만큼 배터리 주요 소재인 양극재가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미래 관점에서 CATL과 에코프로비엠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 또 있다. 바로 나트륨이온 배터리 분야다. CATL은 지난달 테크데이를 열어 2세대 나트륨 이온 배터리 '낙스트라'(Naxtra)의 상용화 준비가 완료돼 하반기 중으로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낙스트라는 2021년 CATL이 처음 발표한 1세대 나트륨이온 배터리에 이은 2세대 제품이다. 에너지밀도가 1㎏당 175와트시(Wh)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주행가능 거리가 약 500㎞이며 영하 40도에서도 충전량의 90% 이상을 유지하는 등 전력 저하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CATL 측 설명이다. CATL은 낙스트라를 6월 중장비 차량 스타터 배터리용부터 생산하기 시작해 12월에는 전기차·하이브리드차량용 대형 배터리도 양산할 계획이다.
에코프로비엠은 개발 중인 나트륨 양극재 기술력에 대해 자신하고 있다. 최문호 에코프로비엠 대표는 지난 3월 열린 인터배터리 2025에서 “에코프로의 나트륨이온 배터리 기술력은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며 “나트륨이온 배터리와 관련해 빠른 속도로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배터리 소재 업계 중국과의 협력에 나선 것은 유럽에서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CATL, BYD, CALB 등 중국계 기업의 점유율은 올해 1월 기준 56.3%를 기록했다. 이는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이후 저가형 배터리 채택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 업계는 미국의 견제로 인해 북미 시장으로 진출하기 어려운 만큼 해외 진출이 가능한 지역은 유럽밖에 없다”면서 “더구나 유럽의 신성 배터리 업체로 주목받았던 노스볼트가 파산하는 등 유럽 자체 배터리 공급망 구축이 어려워진 만큼 유럽 내 중국 배터리의 입지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