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다른 존재에 대한 “인간의 책임감 얘기”

소설가 이기호(53)는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운다. 이름은 이시봉. 비숑 프리제다. 8년이나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이시봉은 우연히 그의 삶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를 변화시켰다. 소설도 쓰게 했다. 그가 11년 만에 낸 본격 장편 소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문학동네)이다.
광주에 사는 작가를 지난 1일 전화로 만났다. 소설의 기원을 따라가기 위해 반려견 이시봉을 만난 얘기를 먼저 했다.
“어느 날 아내와 점심을 먹고 광주천변을 걷고 있었어요. 그쪽에 펫숍 거리가 있었는데, 한 상점의 강아지가 저희 부부를 보면서 앞발을 통통 치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안쓰러워 뭐에 홀린 듯이 강아지를 데려왔고 그게 이시봉이에요. 그런데 사실 전 강원도 원주 출신이고 유년 시절도 경기도 가평 시골에서 보냈어요. 어린 시절 제게 강아지는 소나 돼지와 같은 가축이었고, 강아지를 반려동물로 키운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반려동물에 대해서 공부해야겠다 하고 책을 찾아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이라는 책을 봤어요. 책에서 말하는 비판 의식의 화살에 나에게 오는 것을 깨달았어요. 놀랍고 부끄럽고 같이 살고 있는 존재에 대한 관점이 커졌어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개 번식장과 도살장 보호소에 이르기까지 버려진 개들의 추적한 르포다. 작가는 이 책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 소설을 구상했다. 자신이 이시봉의 가족도 역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시봉의 역사를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소설은 화자인 20대 청년 이시습의 가족과 반려견인 비숑 프리제 이시봉의 이야기다. 이시습의 아버지는 이시봉을 아끼며 자식처럼 대했지만, 도로에 뛰어든 이시봉을 구하려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는 이시봉을 냉대하고, 이시습은 술에 빠져 폐인처럼 지낸다. 그런데 어느날 반려견 교육 업체 ‘앙시앙 하우스’ 관계자들이 찾아와 이시봉이 과거 유럽 왕실에서 기르던 고귀한 혈통의 후예라며 자신들에게 개를 넘겨주면 많은 돈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해 온다.
이야기의 시작은 간단하지만 이시봉을 중심으로 개를 둘러싼 인간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소설은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한다. 이시봉이 시습의 가족에게 오게 된 이야기와 왜 이름이 이시봉이 되었는지를 비롯해 개농장에 방치되었던 이시봉의 과거와 함께 왕가 생활을 하던 비숑 프리제들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소설 안의 세계는 1808년 스페인에서 발발한 민중 봉기와도 연결된다.
결국 527쪽의 꽤 긴 분량이 됐다. 초고는 여기에 200자 원고지 약 500쪽을 더한 양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시봉이 주인공이지만, 사실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얘기도 섞여있다”며 “모든 소설은 어떤 행동을 한 인간의 동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인물들의 동기를 설명하려다 보니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022년 주간문학동네에서 5개월 정도 연재한 작품이다. 연재가 길어졌고 결말에 대한 고민도 있었던 터라 연재를 중단하고 단행본으로 작업했다. 그런데 3년 만인 올해 7월에야 책이 나왔다. 그 사이 매해 다수 언론사 새해 문학 기대작에 이 책의 이름이 나왔다. 마감에 대한 압박이 있었을 만하다. 작가는 “처음 생각한 결말은 지금과 달랐다. 그 결말로 잘 되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가을에 결말을 바꾸기로 하고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원래 결말은 조금 더 어두웠다고 한다.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라 작가가 이시봉에게 슬픈 결말을 주는 것을 망설였던 듯하다.
책은 결국 강아지를 비롯해 인간과 함께하는 존재에 대해 우리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바보 같은 짓을 많이 하지만, 한편 인간은 책임을 가질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며 “위선적이든 작위적이든 (다른 존재에) 책임을 지는 쪽으로 가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했다.
배우이자 출판사 대표 박정민이 추천사를 썼다. 지난해 박정민이 SNS를 통해 팬이라며 먼저 연락해 왔고 이를 통해 인연이 됐다. 최근 박정민이 추천한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는 등 박정민 홍보 효과를 얘기하자 작가는 “출판사가 부탁했더라”며 “미안해서 밥 한 번 샀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