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조계에 일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법정물’. 이 장르는 오랜기간 동안 ‘의학물’과 더불어 장르 드라마의 축을 잡아 왔다. 법정이라는, 인간의 욕망이 가장 크게 부딪치는 장소를 배경으로 택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조인이라는 보통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직업적 특성을 보이며 이채로움을 안겼다.
하지만 이러한 법조물의 서사 역시 법조계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그려져 오기도 했다. 연출하는 PD나 대본을 쓰는 작가 모두 법조계에 몸담지 않은 상황에서 연출이나 집필 과정에서 종사자들의 언급을 참고하거나, 그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소재를 보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법정물에 있어서는 그런 걱정은 기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새로 나오는 드라마들이 ‘디테일’에 승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동력은, 바로 법조계에 몸 담았던 이들의 대본 집필에서 시작됐다.
JTBC는 지난 2일부터 새 주말극 ‘에스콰이어: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을 편성해 방송을 시작했다. ‘나의 완벽한 비서’ ‘악귀’ 등을 공동연출했고, ‘재벌X형사’를 연출했던 김재홍PD와 함께 박미현 작가가 대본을 썼다.

김PD는 최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비슷한 장르의 드라마 tvN ‘서초동’을 가리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저희 작품을 써준 작가님이 현직 변호사시다. ‘서초동’이 법조타운을 배경으로 한다면, 이건 국내 5대 대형 로펌 속 이야기라 구조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미현 작가는 현직 변호사 출신으로 드라마 대본을 통해 메인 작가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서초동’ 역시 마찬가지다. ‘서초동’을 쓴 이승현 작가 역시 대학시절 시나리오 집필에 관심을 가졌던 현직 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서초동’을 통해 월급을 받는 법인 소속 변호사, 즉 ‘어쏘 변호사’의 존재를 전면으로 내세워 디테일을 획득했다.

두 작품이 변호사를 그리는 방식은 다소 다르다. ‘에스콰이어: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이 대형 로펌을 배경으로 신입 변호사 강효민(정채연)이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송무팀 팀장 파트너 변호사 윤석훈(이진욱)을 만나 진정한 변호사로 성장하는 ‘2인 서사’에 중점을 둔다면, ‘서초동’은 서초동 법조타운의 형민빌딩을 배경으로 건물에 입주한 법무법인들의 ‘어쏘 변호사’ 성장담을 다룬 ‘다층 서사’다.
이러한 법정물의 디테일, 그리고 그 가능성은 지난해부터 검증됐다. 가장 화제를 모은 작품이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방송된 SBS ‘굿파트너’였는데, 이 작품의 작가는 유명한 이혼 전문 변호사였던 최유나 작가였다.

법무법인 태성의 공동대표변호사였던 최 작가는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할 정도로 변호사로도 이름을 얻고 있었다. 그는 이혼 전문 변호사를 다룬 ‘굿파트너’를 통해 보통사람들이 들으면 기가 찰만한 다양한 이혼 소송 사례를 사실적으로 전하며 화제성을 모았다.
결국 드라마는 주연 장나라와 남지현의 호연과 장나라가 연기한 차은경의 나쁜 남편 김지상 역 지승현의 캐릭터가 합쳐지면서 결국 지난해 SBS ‘연기대상’ 장나라의 대상 수상에 이바지했다. 이후 법정물의 경우는 급격하게 현직 변호사의 대본 참여지분이 높아지고 있다.

의학물의 경우도 현직 이비인후과 전문의 이낙준 작가가 필명 ‘한산이가’로 쓴 웹소설 원작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가 인기를 얻는 등 현직의 디테일을 획득한 작품들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특유의 장르적 재미에 이제는 디테일까지 갖춘 법정물이 2025년 드라마의 큰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