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티넨탈 ‘25>로 막 올린 전주국제영화제···노숙자의 죽음 앞 인간의 양면성

2025-04-30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가 30일 막을 올리고 열흘간의 축제를 벌인다.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각본상)을 받은 루마니아 출신 라두 주데 감독의 <콘티넨탈 ‘25>를 개막작으로 선택했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의 중심 도시 클루지의 법 집행관 오르솔랴는 건물 보일러실에 기거하는 노숙자를 강제로 퇴거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콘티넨탈 부티크’라는 고급 호텔 건설사가 법원에서 받아낸 퇴거 명령서를 이행하게 하는 건, 오르솔랴의 일일 뿐이다. 그런데 “짐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던 노숙자가 잠깐 사이에 그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영화는 이 사건으로 오르솔랴가 겪는 죄책감과 혼란을 따라간다.

오르솔랴는 친구, 가족, 제자, 신부 등을 만나 변명하듯 죄책감을 털어놓는다. 그 노숙자에게 일을 알아봐줬어야 했나, 다른 방식은 없었나 묻는 오르솔랴에게 그들은 입을 모아 “네가 할 수 없는 건 없었다”고 위로한다.

주데 감독은 전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컷을 나누기보다, 카메라를 멀리 거치해둔 채 인물들의 대화와 움직임을 관조하듯 촬영했다. 각종 NGO에 정기 기부를 하고 전쟁 범죄를 규탄하면서도, 눈앞의 생생한 빈곤은 정작 외면하는 보통의 양면성이 건조한 시선 앞에 드러난다.

<콘티넨탈 ‘25>의 주연인 오르솔랴 역을 맡은 배우 에스테르 톰파는 이날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개막작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는 ‘집’에 대한 여러 측면과 폭력적인 자본주의를 다룬 영화”라고 했다. 그는 “오르솔랴는 똑똑한 인물이지만, 그것이 실제 부패·권력 남용·탐욕 등 문제를 바꾸지는 못한다”고 했다.

극중 오르솔랴는 루마니아에서 소수인 ‘헝가리계’라는 정체성을 갖는데, 이는 영화에 층위를 더한다. ‘헝가리계 집행관 때문에 루마니아인이 죽었다’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그는 온라인에서 무수한 악성 댓글을 받는다. 인접 국가이자 역사적으로 긴장관계였던 두 국가의 오랜 갈등이 대사에 묻어나온다.

실제로 헝가리계인 톰파는 “촬영 이후 선거가 있었는데, 후보자 중 ‘헝가리 사람은 루마니아에서 소수이고 물과 공기를 가진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었다”며 “영화 속 내용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많이 반영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루마니아뿐 아니라 유럽 전반에서 극우가 떠오르는 현실을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아직 루마니아에서 상영되지 않았는데, 그 반응이 궁금하다”고 했다.

‘우리는 늘 선을 넘지’란 슬로건을 내건 이번 영화제는 오는 9일까지 열흘간 이어진다. 세계 57개국 224편(국내 98편·해외 126편)의 영화가 전주 시내 곳곳에서 관객과 만난다.

영화제 첫 행사인 개막식은 이날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배우 김신록과 서현우의 사회로 진행된다. 배우 이정현, 진선규, 송지효, 김보라, 안소희, 박소진 등이 개막식 레드카펫을 빛낼 예정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특별전을 여는 배창호 감독 등 국내외 영화인들이 전주를 찾는다.

지난해 12월 위암 투병 끝에 별세한 한국영화계 거장 송길한 작가에게 올해 특별 공로상이 수여된다. 전주 출신인 고인은 40여 년 간 <만다라>와 <길소뜸> 등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담은 시나리오로 한국영화사에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 작가의 유가족은 대리 수상을 위해 전주를 찾았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함께 국내 3대 영화제로 꼽힌다.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를 주로 상영한다. 폐막작으로는 김옥영 감독의 <기계의 나라에서>가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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