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감독 “아직도 필름으로 촬영해요···불편함이 주는 자유”

2025-04-30

한국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씨네큐브 개관 25주년 ‘스페셜토크’

‘우리가 극장을 사랑하는 이유’ 현장 중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영화표를 구하지 못해 극장 매표소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어둠의 손’에 이끌려 웃돈을 주고 암표를 사야 인기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때 극장의 위상은 대단했다. 멀티플렉스가 도입되면서 상영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인터넷 예매가 활성화되면서 암표 관행은 사라졌다. 하지만 거대자본이 투입된 영화의 상영관 독점과 이로 인한 단관 극장들의 줄도산 등 그늘도 짙게 드리워졌다. 그런데 이제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그 멀티플렉스도 손님이 들지 않아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는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인기 때문인데, 요즘은 심지어 OTT조차 7초짜리 숏폼 동영상에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편하고, 빠르고, 효율적이고, 가성비 좋은 것을 좇는 시대에 불필요한 ‘시간 낭비’가 많은 영화관이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63)가 한국을 찾아 이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극장을 사랑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29일 씨네큐브에서 열린 배우 이동휘와의 스페셜토크 행사에서였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날 대담에서 “영화관과 거기서 본 영화들이 제게는 학교와 같은 존재”라며 “10대에서 20대까지 영화관에서 봤던 작품들이 저를 길러줬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장소를 잃지 않아야 하고 길러 나가는 것이 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세계 영화계에서 거장 반열에 오른 감독이자 특히 한국에서 사랑받는 감독이다. 영화 <어느 가족>으로 2018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배우 송강호가 한국인 최초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브로커>가 고레에다 작품이다.

씨네큐브는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지난 23일부터 고레에다 영화 13편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열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씨네큐브에서도 지난 25년 동안 가장 많은 작품이 상영된 감독이다.

관객 입장에서 굳이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는 일은 ‘불편함’을 수반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극장에서는 OTT와 다르게 영화를 멈추고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며 “전혀 모르는 사람 옆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고 화장실도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제약으로 인해 창작자나 제작진에게는 자유가 허용되고 창작의 공간이 확장된다고 했다. 그는 “채널이 돌아가지 않도록 5분에 한번씩 폭발을 시키는 식의 연출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칸 영화제 당시 <어느 가족> 관람 경험을 떠올리며 “2000석가량되는 상영관에서의 일인데, 안도 사쿠라 배우가 취조를 받는 장면에서 정말 단 한 사람도 기침을 한다거나 꼼지락대거나 하지 않는 상태가 형성되는 걸 느꼈다”고 했다. 감독은 이를 ‘무(無)의 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는 “모두가 스크린에 집중해서 정말 미동도 하지 않고 보는 고유의 시간이 흘러갔다”며 “2시간짜리 영화에서 1분도 안 되는 순간이었지만 모두가 공유하는 이 체험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동휘는 “극장에서 화면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감독의 시선을 온전히 느꼈을 때, 남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안도 사쿠라 배우의 마지막 취조 장면이 너무 강렬해서 깊게 남아있다. 최근에는 ‘걸어도 걸어도’가 최애 작품”이라고 했다. 이동휘는 <브로커>에 출연했다.

고레에다는 영화를 촬영할 때 아직도 필름을 쓴다. 고레에다 감독은 “필름을 현상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나중에 색 보정도 해야 된다”며 “후처리도 손이 많이 가지만 저는 이 장면이 정말 중요한 순간이라면 그 부분은 특히 필름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최근 선보인 연출작은 지난 1월 넷플릭스에 공개한 7부작 드라마 <아수라처럼>인데, 이 드라마도 필름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그는 “영화가 무엇에 의거해서 표현되는 매체인가를 생각하면 필름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다”며 “필름이 디지털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시대는 변화에 휩쓸려갈 테지만 멈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며 “어떻게 보면 낙오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멈춰서 계속 만드는 쪽을 선택할 거 같다”고 말했다.

그도 현재의 흐름을 막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그는 “40여년 전 대학을 다닐 때 와세다대 주변에 미니시어터(소극장)가 네 군데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한 군데”라며 “도쿄는 그나마 괜찮지만 지방도시로 가면 수년 동안 자취를 감춘 미니시어터들이 꽤 많다”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오늘 이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분들이 영화를 본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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