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미디어] 꽤 괜찮은 어른

2025-12-18

직장생활을 하며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고, 존경할 수 있는 상사가 곁에 있다는 것은 한 사람의 태도와 선택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런 어른이 있을 때 사람은 조금 더 책임 있게 행동하고, 자신의 일에 조금 더 주도적으로 임하게 된다. 그들은 단순히 업무를 잘 처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의 의미와 가치를 보여주며, 스스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런 어른을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오히려 오랜 교육 과정 동안 우리는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워온 일들을, 어떤 어른들은 너무도 쉽게,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르기도 한다.

과거 일했던 한 회사에서도 그랬다. 한 직원의 사소한 ‘횡령’은 관리자를 제외하면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국비로 운영되는 사업비로 아이의 줄넘기와 색종이, 색연필 같은 학용품을 구매했고, 그 사실은 문구점 사장님이 작성한 장부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 아이가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자라길 바랄 엄마가 되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일을 알게 된 뒤로는 이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보이던 장면들마저 하나둘 의심으로 다가왔다. 스마트워치 케이스가 부서지자 이를 사업비로 구매해 집으로 배송시키고, 개인적으로 먹은 음료와 식사조차 서류를 조작해 회의비로 처리하며 마치 개인 자금처럼 사용하는 일도 반복되었다.

증거는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실을 폭로하지 못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관리자의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근거 없는 신뢰는 편애에 가까웠고, 그 관계는 쉽게 흔들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사실은 나를 망설이게 했다. 이 일을 이야기해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웠고, 오히려 내가 문제를 말하는 순간 애꿎은 일을 들춰낸 반역자가 될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회사생활은 점점 버거워졌다. 문제를 외면한 채 동조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자각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언젠가는 그들이 스스로 돌아보리라 기대했지만, 정작 성찰이 필요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법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확신은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했고, 부정에 이기지 못한 양심은 결국 부러지고 또 부러져 그 안에서 동화되거나 회사를 떠나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역시 그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 떠올리면, 아직도 찝찝하기 그지없다.

더욱 웃긴 것은 어떤 회사를 가든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디에나 양심을 저버린 어른들은 있었고, 누군가는 침묵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잘못을 꿈에도 몰랐으며, 누군가는 괴로워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언제나 결국 ‘침묵’을 택했던 나의 선택에 ‘후회’와 ‘안도’가 겹친다. 우리가 지금껏 목격한 수많은 양심선언은 언제나 크나큰 리스크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역시, 나 또한 꽤 괜찮은 어른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새해를 맞아 나는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 정의롭고 용기 있는, 누군가가 존경할 만한 어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누군가의 ‘부끄러움’은 되지 말자고. 양심을 지키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같은 잣대를 내밀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말이다. 그렇게 신념을 지켜나가다 보면, 결국 꽤 괜찮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

진보화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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