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인 케빈 고르네(26) 씨는 지난해 e스포츠 대회 영상을 시청하던 중 국내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 선수에게 매료됐다. 페이커를 향한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문화와 사회를 경험해보고 싶은 열망을 느낀 고르네 씨는 지난해 말 워킹홀리데이 비자(H-1)를 취득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재 글로벌 마케팅사 보조 업무를 하고 있는 고르네 씨는 “퇴근 후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라면을 먹는 것이 일상이 됐다”며 웃었다.
쇼핑이 주를 이뤘던 국내 관광의 주요 키워드가 점차 ‘체류’와 ‘일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K콘텐츠의 인기가 음식·의료·미용 등 생활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단순 관광을 넘어 한국인처럼 살아보려는 흐름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8일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에서 장기 체류한 외국인은 2021년 156만 9836명에서 지난해 204만 2017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장기 체류자는 법무부에 외국인 등록을 하고 90일 이상 머무르는 이들을 의미한다. 특히 올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흥행과 중국 단체 관광객 무비자 시행 등이 맞물려 방한 외국인이 역대 최다를 기록한 만큼 장기 체류자도 더욱 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9월까지 외국인 관광객 1408만 명이 한국을 찾았다고 밝혔다.
장기 체류 수요 증가는 한국이 외국인에게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 ‘김씨 표류기’를 보고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에스토니아 출신 라우노 칼드마(35) 씨도 올해 워킹홀리데이차 한국을 찾았다. 그는 “외국에서 한국은 치안이 좋고 교통이 편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며 “언어가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한국인처럼 헬스장에 간 뒤 닭가슴살을 먹는 일상을 보낸다”고 전했다. 일본에서 유학 온 히마리(23) 씨 역시 “외국인이 없는 한식당을 발견했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며 “편의점 1+1 행사 일정을 외우는 습관도 자연스레 생겼다”고 말했다.
장기 체류 비자 발급도 증가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경우 한국에서 1년간 머무르며 돈을 벌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은 2022년 3093명에서 2024년 1만 972명으로 급증했다. 올해 들어 상반기에만 6270명이 워킹홀리데이로 한국을 찾았다.
외국인 장기 체류자를 겨냥한 숙박 업소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특히 고시원은 가격이 저렴하고 보증금이 필요없다는 점에서 2030 외국인 사이에서 새로운 체류지로 떠올랐다. 서울 고시촌에서는 영어나 중국어 안내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Seoul goshiwon’을 주제로 한 콘텐츠도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외국인 장기 체류자를 대상으로 영어 고시원 룸투어를 제공하고 있는 숙소 중개 플랫폼 ‘독립생활’은 “올해 외국인의 고시원 예약이 지난해보다 4배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청년이나 대학생뿐만 아니라 외국 직장인 사이에서도 한국은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한국형 워케이션 비자(F-1-D)를 시범 도입했다. 최소 연봉 8500만 원 이상의 외국인 원격 근무자가 한국에 장기 체류하며 관광을 병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워케이션 비자를 통한 국내 입국자는 지난해 445명에서 올해 9월까지 819명으로 증가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외국인 디지털 노마드’를 유치하기 위해 한국관광공사 해외 지사를 통한 홍보, 숙박·업무 공간 지원, 문화 프로그램 연계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광 트렌드가 기존 팬덤 중심에서 일상 영역으로 확장되는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K콘텐츠의 영향으로 한국이 세계적으로 ‘익숙한 국가’가 되면서 유명 관광지가 아닌 ‘한국인스러운 장소’에 대한 선호가 커진다는 것이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 교수는 “외국에서 한국 장기 체류 경험이 활발히 공유되면 연쇄적으로 소비 진작 효과가 커져 긍정적”이라며 “이제 한국은 관광지에서 나아가 하나의 ‘일상 무대’처럼 인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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