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행위는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선사시대부터 해왔던 자연스러운 사실행위이다. 의료행위의 범위와 방법은 시대적·환경적·종교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되어왔다. 조선 시대에는 전의감에서 의원선발시험을 거쳐 관청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였을 뿐 민가에서는 제한 없이 침술·부항·창상치료를 했다. 이는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성직자들이 치료행위를 맡아왔고 달리 무면허의료행위로 규제하지 않았다. 근세에 들어 현미경 발명으로 세균이 발견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항생제와 마취제, 수술 도구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의료법을 제정하여 전문가인 의사에게만 허용하고 비의료인에 의한 무면허의료행위를 금지하기 시작하였다.
경직된 직역 역할 구분 안 통해
의사 취업 현황, 간호 질 등 따져
간호사 업무 하위법령 정하되
의사 지시감독권은 강화해야

의료법은 의료인의 종류와 자격부여방법, 개설허가절차, 무면허의료행위 처벌 등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규정을 중심으로 만들었고, 의료행위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서는 법률해석에 맡겨왔다. 대법원은 “의료행위라고 함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행위뿐만 아니라 의학적 전문지식이 있는 의료인이 시행하지 않으면 사람의 생명·신체나 공중위생에 위해를 발행시킬 우려가 있는 행위를 포함한다”며 의사 중심으로 의료행위를 해석하는 데 그치고, 치과 및 한의 의료행위, 간호행위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있다. 치과의사의 보톡스 투약행위, 한의사의 영상진단행위, 간호사의 골수채취행위 등 개별 사건에 대해 개별적으로 무면허의료행위 여부를 간접적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의학·치의학·한의학·간호학의 학문적 역량 확대, 치료기술, 검사 기계, 수술 도구, 약물, 정보기술과 인공지능에 기반한 진단소프트웨어 등의 개발, 의료인 간 협업 치료 등으로 인해 지나치게 경직된 진료업무 구분은 오히려 환자 치료에 방해가 되고 있다. 서양의학 도입 이후 100년 넘게 의사 수의 절대적 부족, 비인기과 기피 현상에 더하여 작년 2월 전공의 집단사직사태로 의료기관에서는 구인난, 높은 임금 부담 등으로 경영난을 겪으면서 전공의가 떠난 자리를 간호사로 대체하여 검사와 수술 보조행위를 맡기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외과·산부인과·비뇨의학과 등 비인기 외과 계열 수술은 간호사가 없으면 시행을 하지 못하는 의료기관이 많고, 일부는 고육지책으로 간호조무사에게 수술보조를 맡겨 집도하다가 무면허의료행위로 형사 처벌 받기도 하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국회는 간호사에게 ‘진료 및 치료행위에 관한 진료지원업무’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간호법을 제정하였고, 보건복지부는 올 6월 시행에 앞서 간호행위의 구체적 범위를 정하기 위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정갈등·의료대란 직후 대법원에서 간호사에게 무면허의료행위로 금지한 대리수술, 내고정물 삽입, 전문의약품 처방 등 일부를 제외한 검체 채취, 복수 천자, 심전도검사, 직장수지검사, 봉합, 기관삽관, 체외충격파쇄석술, 중심정맥삽관, 응급심폐소생술 등을 허용하고 시범사업을 시행한 결과 지금까지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시범사업결과와 임상현장에서 간호사가 관행적으로 수행하여 온 수술·마취·응급·중환자·호흡기·순환기·심혈관흉부·신경외과 등 10여 개 분야에 대해 진료지원업무를 전문간호사가 합법적으로 담당하도록 하위법령을 구체화하고 있다.
하위법령제정에 대해 일부 의사단체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간호법 하위법령 제정은 직역 간의 업무 경계를 무너뜨리고, 의료시스템 붕괴를 가속화 할 악법이다”라면서 반대를 하고 있다. 의사·간호사 사이에 첨예한 이해갈등이 감정대립으로 이어져 제2의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의료법과 간호법 제1조는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와 간호 혜택을 받는다’고 하여 치료주권자는 환자이고, 의사와 간호사는 치료의무자로서 환자안전과 건강증진에 이바지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치료주권자인 환자가 배제된 채 이해관계자들 사이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다투는 것은 자제하여야 한다. 의사와 간호사는 진료주권자인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협력자이다. 전문간호사에 의한 진료지원업무 합법화는 현실에서 필요한 제도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료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의료접근성을 높여 충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순기능이 크다. 보건복지부는 환자가 주도하는 사회적 합의체를 만들고, 의사 취업 현황, 간호의 질 등을 고려하여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정하여야 한다. 간호사의 업무확대에 대하여 의사의 지시감독권을 강화하고, 국민건강보험료에 간호행위 위험료를 신설하여 사회부담으로 제도화함으로써 환자가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간호법 입법목적이 달성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생명과 건강권은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