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 확대와 플랫폼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는 미국의 기조가 국내 디지털 규제의 향방을 흔들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단기적으로 정부·국회가 추진해 온 플랫폼 규제에 제동이 걸리며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도 숨 고를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해외 빅테크에 유리한 환경이 고착돼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무슨 일이야
13일(현지시간) 발표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합동설명자료)에는 “한·미 양국은 미국 기업이 네트워크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 등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고, 위치·보험·개인정보 등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원활히 보장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디지털 규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문구가 포함되면서, 국내 플랫폼 업계는 이에 따른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게 왜 중요해
양국 간 디지털 장벽을 허물려는 미국의 기조가 강화되면서, 안보·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한국이 적용해온 각종 규제책과 부딪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진 않지만 국내에서 진행 중인 빅테크 망 사용료 부과,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지도·위치정보 반출 논의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정부나 학계에선 플랫폼 규제가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해당 규제를 차별적이라고 보는 시각을 일관되게 유지해왔고, 이러한 문제의식이 이번 팩트시트 문구에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일단 기회? 장기적으로는 압박
업계에서는 이번 발표가 단기적으로는 국내 규제 환경을 재조정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플랫폼 운영 전반에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온플법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하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던 법안이다. 국내 플랫폼 업계는 이번 공동 발표 내용을 계기로 정부·국회가 추진해온 강도 높은 규제 드라이브에 일단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들의 게시물까지 플랫폼에 책임을 묻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가 됐는데, 팩트시트 이후 이런 규제 흐름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러 규제 패키지가 동시에 밀어닥치던 흐름이 잠시 완화되면서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에게도 숨을 고를 시간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특히 이번 합의문에 “위치 정보, 개인정보 등을 포함한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원활히 보장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이 미국에서 쌓은 데이터를 한국으로 가져오는 실익은 제한적이지만 한국 시장에 쌓인 소비·검색·이용 패턴 데이터를 빅테크들이 자유롭게 미국으로 가져간다면 글로벌 서비스 설계의 시금석 역할을 하는 고급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한국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며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로컬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 경쟁력을 축적해 온 국내 기업들의 성장세는 약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는
전문가들은 팩트시트에 포함된 문구가 향후 국내 법안 설계 과정서 해석 논란을 키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해석의 여지를 방치하면, 미국은 자국 기업에 불리한 조항을 차별로 문제 삼을 수 있고 국내 기업은 되려 더 강한 규제 환경에 놓일 수 있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부 기준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이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선지원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규제는 국내외 기업 모두에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역차별받지 않도록 기준을 정교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