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스테이블코인이라는 모순어법

2025-09-05

모순어법(oxymoron)이란 말이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말들인데, 스테이블코인이란 말도 그렇다. 코인이라고 하면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게 마련인데, 안정적이라니.

암호화폐는 그 이름과 달리 화폐로 도저히 쓸 수 없을 정도의 변동성을 자랑하는데, 이를 억제하기 위해 안전 자산을 담보로 가치를 고정한 것이 스테이블코인이다. 한때 알고리즘으로도 가치 고정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테라-루나 사태로 허언 또는 사기일 뿐이라고 여겨지는 지금, 달러 같은 유력 법정 통화에 ‘페깅(Pegging·고정)’하는 것이 변동성을 억제하는 유일한 길이 됐다.

신용카드에 간편 결제까지 ‘페이’가 일상이 된 지금, 스테이블코인의 쓸모는 일반인의 눈엔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제각각의 사정으로 금융기관 경유 없이 해외 송금을 해야 한다거나, 코인 거래의 중간 통화로 쓰기엔 제법 요긴해 보인다. 그러나 적잖이 불안정한 인생과 국가가 아니고서야 이를 실제로 쓸 일은 많지 않아 보였기에 제도권에서는 다른 암호화폐와 함께 무시돼왔다.

그러나 미국 지니어스법(GENIUS Act) 제정으로 각국의 스테이블코인 정책에 급전개가 벌어졌다. 미국은 왜 갑자기 스테이블코인에 전향적이 됐을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보인다. 하나는 최근 어디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달러를 온라인상에서 대체하려는 시도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달러는 기축통화로서의 패권을 무슨 수를 써서도 지켜야 할 동기가 있다. 달러로 이뤄졌던 국제무역의 일부라도 만약 디지털 위안화나 디지털 유로 등으로 이뤄진다면 곤란하다.

또 하나는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 문제를 풀기 위한 용도다. 해외에 예치해 무역이나 거래 담보 등에 대활약 중인 달러 예금을 유러달러라고 부른다. 이 일종의 핫머니가 미제 스테이블코인으로 교체되면 미국으로 들어올 수 있다. USDT나 USDC 같은 운영사는 코인을 바꿔주며 받은 달러를 보통 미국 국채에 투자해 돈을 번다. 그렇게 국채 수요가 늘면 재정 적자 해소에 득이 된다. 국채를 판 돈도 돈이지만, 국채 수요가 늘면 더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사정과 세계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일대일로로 키워놓은 역내 무역에서의 위안화 입지를 미제 스테이블코인이 망쳐놓을까 두렵다. 통제를 강화하고 디지털 위안화 등 대체품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유럽은 디지털 유로를 만들어 유로화의 지배적 위치를 보호하려 한다. 엔화 스테이블코인도 지난 8월 허가가 났다. 아시아 역내 무역의 결제 수단으로서 엔화의 존재감이 커진다면 ‘달러 의존도 완화’라는 통화 전략이 성공하게 된다.

덩달아 한국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시끄럽다. 관련 테마주도 들썩인다. 그러나 역내 무역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코인 거래 이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 더 느리고 복잡하다. 거래 실수를 하소연할 수 없으니 위험하다. 코인은 탈중앙화라는 이상을 위해 이런 불합리를 감내한다지만, 발행사가 감독받는 스테이블코인은 별로 탈중앙화도 아니니, 이 또한 모순어법이다. 다만 발행사는 관심을 받으니 되든 말든 홍보 효과는 상당할 듯하다. 당분간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동상이몽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