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재개발원에서 핵심 리더들을 위한 ‘리더십 독서경영’ 강의를 준비하다가, 스스로 묻는다. 리더는 왜 책을 읽어야 하나. 무엇을 어떻게 읽고, 그 읽기가 어떻게 사고와 판단이 되어 리더십으로 이어지는가
리더의 하루는 촘촘하다. 그래서 읽기를 미룬다. 그러나 시간은 읽기에서 벌어진다. 느리게 읽을수록 생각은 깊어진다. 깊어진 생각이 빠른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독서에서도 훑어 읽기가 있지만, 보고서를 요약으로만 훑을 때와 원문을 찢어 읽으며 질문을 스스로 세울 때의 결과는 다르다. 질문을 설계하는 힘, 곧 리더십의 근육은 독서에서 자란다.
최근 신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공정, 기준, 적용 같은 키워드가 늘 곁에 붙어 있다. 같은 일에는 같은 보상이라는 원칙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직무가 같아 보여도 책임의 범위와 위험의 크기, 이해관계의 얽힘, 공공에 미치는 파급은 다르다. 리더의 역할은 이 차이를 보이지 않게 덮는 것이 아니라, 보이도록 드러내고 공정하게 설계하는 일이다.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 적용의 속도를 어디에 맞출지, 어떤 보완 장치를 둘지 정해야 한다. 책읽기가 도움을 준다. 역사서에서 원칙의 뿌리를 확인하고, 사회과학에서 제도 설계의 방법을 배우고, 문학에서 사람의 마음과 다양성을 간접 경험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숫자와 규정 사이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누군가는 더 큰 가치를 만든다. 스스로 질문하는 사람, 상황의 맥락을 붙여 설명하는 사람. 결정의 이유를 문장으로 명확히 남기는 사람. 책임의 경계를 먼저 정의하고 공유하는 사람. 이들은 우연히 그러지 않는다. 꾸준한 읽기와 쓰기로 판단의 기준을 길러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독서는 취향이 아니라 기능이다. 리더의 기능은 바로 이 기능 위에서 돋보인다. 결국 책을 읽는 리더가 빛을 낸다. 그것도 스스로.
생각과 판단은 메모 쓰기와 글에서 단단해진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왜 지금 이 선택인가’를 먼저 써보자. 적어가다 보면 자신의 치우침과 오류를 발견하기도 한다. 반대 근거를 적고, 부작용을 가정하고, 대응 시나리오를 비교한다. 글쓰기는 보고의 형식이 아니라 검증의 과정이다. 조직에 공유하면 기준이 조직의 언어로 번역된다.
리더의 차이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에서 나온다. 더 많이 읽은 사람은 더 넓게 본다. 더 넓게 보는 사람은 더 정확히 설명한다. 더 정확히 설명하는 사람은 더 공정하게 나눈다. 리더의 가치는 바로 이 순서에서 드러난다. 읽기·사고·문장·설명·설계. 이 과정을 매일 조금씩 만들어 갈 때, 같은 일을 하면서도 더 큰 공익을 만들어낸다.
리더는 왜 읽는가. 더 잘 책임지기 위해서다. 무엇을 읽는가. 원칙과 맥락과 사람을 함께 담은 책을 읽어야 한다. 어떻게 판단하는가. 글로 근거를 세우고, 말로 설명하고, 제도로 이행한다. 그 과정이 조직의 신뢰를 만든다.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책을 읽는 조직. 책을 읽는 리더. 책을 읽는 사회. 이 셋은 어떤 환경에서도 가치를 잃지 않는다. 오늘 펼친 한 페이지가 내일의 한 문장이 된다. 그 문장이 제도를 움직이고, 제도가 사람을 지킨다. 지금 당신의 책장이, 조직의 앞길과 사회의 기준을 밝힌다.
글 = 조석중 (독서경영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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