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25년 여름, 부동산 시장의 공기는 묘하게 무겁다. 지난 몇 달간 서울 아파트값은 조금씩 회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확실한 상승세로 굳어질지, 잠시 반짝인 후 다시 가라앉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거래량은 여전히 많지 않고, 매수자와 매도자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불확실한 장세에서 투자자들이 뚜렷하게 느끼는 압박은 가격 변동이 아니라 세금이다. 집을 여러 채 보유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주택자 규제가 시장의 기저를 흔들고 있고,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다주택자 규제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일시적 정책이 아니라 구조적 환경이 되어 버렸다. 정부가 바뀌고 정치 지형이 변해도,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강화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다. 종합부동산세 중과, 양도소득세 중과 같은 제도적 장치는 일부 완화된 시기도 있었지만, 완화 폭은 제한적이었고 근본적 철회는 없었다.
그 배경에는 단순한 세수 확보를 넘어선 정치경제학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 집값 문제는 곧바로 정치 문제로 비화한다. 특히 수도권 유권자들의 주거 불만은 선거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민감한 변수다. ‘다주택자 세금 완화=집값 폭등’이라는 공식은 정치권에서 강하게 작동한다. 다주택자를 규제하는 정책은 표를 잃을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완화 정책은 대중의 비판을 자초할 수 있다. 이런 정치적 셈법 속에서, 다주택자 규제는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살아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위주로 투자해 온 다주택자들은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매물을 팔자니 양도세 중과가 발목을 잡는다. 보유하자니 종부세 고지가 무겁게 다가온다. 세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고, 단순히 매입과 매도를 반복하는 과거의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부동산 시장은 늘 순환한다. 지금이 규제의 파도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는 물결도 찾아올 것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많이’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좋게’ 보유하는 것이다. 2010년대 초·중반,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해 여러 채를 확보하고 시세차익을 합산하는 방식이 유효했던 시절에는, 물량이 곧 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유 수가 늘어날수록 세금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수익을 잠식한다.
질 좋은 보유란 단순히 입지나 브랜드가 좋은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금 효율이 높고, 장기적으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며, 보유하는 동안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자산을 뜻한다.
세금 효율성이라는 말은 제도 안에서 허용된 범위에서 세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일시적 2주택 비과세 규정은 아직도 유효한 절세 수단이다. 기존 주택을 보유한 채 더 나은 입지의 아파트를 매입하고 2년 안에 기존 주택을 매도하면 양도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 규정을 활용하면 수억 원의 차익을 세금 없이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조건은 엄격하다. 매입일, 거주 기간, 매도 시점 모두 법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야 한다. 단 하루라도 어기면 비과세 혜택은 사라진다. 따라서 갈아타기 전략을 쓰려면 이사 계획과 자금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가족 증여를 통한 종부세 분산도 하나의 방법이다. 부부 공동명의나 자녀에게의 증여를 통해 세대별로 주택 수를 분산하면 종부세 부담이 줄어든다. 그러나 증여세와 취득세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최근 국세청은 편법 증여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있어, 단순히 명의를 옮기는 수준으로 접근했다가는 예상치 못한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법인 전환 역시 일부 투자자들이 검토하는 방법이다. 법인 명의로 주택을 보유하면 종부세 부담이 완화될 수 있고, 임대사업을 확장하기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법인세, 배당소득세, 설립 및 유지비용 등을 감안하지 않으면 되레 불리해질 수 있다.
세금 부담을 줄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시장 모멘텀을 읽는 일이다. 세금이 아무리 높아도 시세 상승이 그 이상이라면 투자는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상승이 확실한 지역을 고르는 안목이다. GTX 개통 예정지, 대규모 개발이 예정된 지역, 규제나 지형적 한계로 신규 공급이 어려운 지역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지역은 단기적으로는 조정을 겪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수요가 꾸준히 이어진다. 예를 들어 GTX-A 노선 개통 전후의 일부 역세권 단지들은 수년간 30%에서 50%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세금을 감안해도 남는 장사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는 빠르게 사라지고, 경쟁은 치열하다. 결국 타이밍이 관건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현금흐름이다. 부동산 투자의 가장 큰 리스크는 보유 기간 동안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버티지 못하면, 시장이 반등하기 전에 손해를 보고 매도하게 된다. 월세 수익은 버티기의 핵심 연료다.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은 이제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깡통전세와 전세사기 문제로 세입자들이 월세를 선호하게 되었고, 수도권에서 월세 비중은 이미 절반을 넘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월세 수입이 보유세와 이자를 충당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소형 아파트,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등은 상대적으로 관리 부담이 적고 공실 리스크가 낮다. 상가주택처럼 1층에서 상업 임대, 위층에서 주거 임대를 동시에 운영하는 모델도 현금흐름 안정에 효과적이다.
아파트에만 집중하는 것은 위험하다. 규제가 집중된 자산군에만 투자하면 정책 변화에 따라 수익 구조가 흔들린다. 따라서 일부 자산은 아파트 외 부동산으로 분산하는 것이 좋다. 소형 상가, 물류센터 지분 투자, 리츠(REITs) 같은 간접투자는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참여할 수 있고, 아파트 시장 변동성과 세금 부담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시장을 읽는 눈도 중요하다. 부동산 시장은 정치, 금리, 정책이 맞물려 움직인다. 대선과 총선 같은 정치 일정이 다가오면, 표심을 의식한 공급 확대나 규제 완화 조치가 나올 수 있다. 금리가 인하될 조짐이 보이면 매수세가 살아난다. 정책 발표와 금리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저점 매수와 고점 매도의 타이밍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제 규제가 완화된다’는 소문에 성급히 매수했다가, 예상보다 완화 폭이 작아 실망 매물이 쏟아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결국 이 모든 전략의 핵심은 ‘덜, 오래, 현금흐름’으로 압축된다. 덜 보유해서 세금 부담을 줄이고, 가치 있는 자산을 오래 보유해 상승분을 극대화하며, 그 기간 동안 현금흐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덜 보유한다는 것은 무조건 팔라는 뜻이 아니다. 세금 부담이 크고 가격 상승 가능성이 낮은 물건부터 정리하라는 의미다. 오래 보유한다는 것은 단기 시세 변동에 흔들리지 않고, 시장 사이클의 고점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현금흐름은 그 기다림을 가능하게 하는 버팀목이다.
다주택자 규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규제가 있다고 해서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장은 항상 움직이고, 변화 속에서도 수익을 낼 방법은 존재한다. 세금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감당하면서도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아파트 투자자들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역량이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유튜브 ‘스튜TV’를 운영·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경기도 부동산의 힘(2024)’ ‘서울 부동산 절대원칙(2023)’ ‘인천 부동산의 미래(2022)’ ‘김학렬의 부동산 투자 절대원칙(2022)’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2021)’ ‘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2020)’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설명서(2020)’ 등이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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