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대구 성서공단에서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뚜안씨(25)가 2층 높이 건물에서 떨어져 숨졌습니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행사를 앞두고 실시된 정부 합동단속 중 벌어진 일인데요. 뚜안씨는 단속을 피하려고 에어컨 실외기 창고에서 3시간가량 숨어 있다 빠져나오던 중 추락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여러 언론이 이 소식을 보도했는데요. 기사에서 ‘미등록 이주민·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표현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일부 독자님들은 “왜 불법체류자라고 부르지 않냐”는 의문을 전하시기도 했는데요. ‘미등록 이주민’과 ‘불법체류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불법체류자란 단어는 한국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온 1990년대 후반 등장했습니다. 1997년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불법취업외국인’이란 용어가 처음 쓰였는데요. 이즈음부터 외국인의 불법출입국과 불법체류 문제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인권의식이 점차 높아지면서 ‘불법체류자’란 용어에 문제가 제기됐는데요. 유엔 국제이주기구(IMO)에선 “범죄와의 관련성을 강조해 이주자의 인간성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자 대신 ‘미등록 체류자’, ‘비정규 체류자’란 표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정부에 ‘불법체류자’란 용어를 지양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수정해달라는 의견을 표명했어요.

‘법을 어기고 체류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담은 ‘불법체류자’란 단어는 얼핏 중립적으로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불법체류자는 감정과 편견이 담긴 ‘편향된 언어’가 되었어요. 2018년 인권위는 이주민과 관련한 단어가 포함된 SNS 게시글 1만 개를 분석했는데요. ‘외국인 노동자’의 연관 단어로는 “동남아, 비하, 반대, 혐오, 추방” 등이 추출됐고 ‘불법체류자’의 연관 단어엔 “저학력, 새끼, 혐오, 결사반대” 등이 나왔다고 해요.
“이주민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해외 주요 매체들도 ‘불법(illegal)’ 대신 ‘미등록’ 혹은 ‘서류미비(undocumented)’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2013년 AP통신이 “불법이란 묘사는 사람에게 하지 말고 행동에만 하라”는 규칙을 만든 뒤로 다른 매체들도 이를 적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행위’는 불법이 될 수 있어도 ‘존재’는 불법일 수 없다는 거예요.

‘불법’을 만드는 건 누구?
‘하지만 불법을 저지르는 건 맞잖아’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법을 어긴 일부 이주민들이 끼치는 피해도 있을 테고요. 법무부도 미등록 체류 사례를 줄이기 위해 2023년부터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합동단속을 지속해 실시하고 있는데요. 결과는 어떨까요? 법무부의 ‘연도별 불법체류외국인 현황’ 통계를 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미등록 체류 중인 외국인은 매년 39만~42만 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단속의 효과가 미비한 셈이죠.

법무부는 ‘불법체류외국인’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요. 체류 기간이 지났는데도 출국하지 않는 외국인, 사업장 이탈 등 체류자격에 허용된 범위 밖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미등록 아동 등 출입국 당국에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은 외국인입니다. 이들은 왜 법 바깥으로 도망가거나 숨는 걸까요?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E-9 등)·전문 취업 비자(E-7)를 받기 위한 절차는 아주 복잡한데요. 정보 접근성이 낮아 대부분은 ‘브로커’를 통해 한국으로 입국합니다. 브로커가 수수료를 부풀려 받다 보니 시작부터 빚을 지는 경우가 허다하죠. 체류 기간 내 빚을 갚지 못하면 불법체류로 빠지기 쉽습니다. 유학 비자(D-2) 등으로 취업할 수 있다고 속거나 구직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뚜안씨도 구직 비자(D-10)로 들어왔지만 법이 정한 취업 분야가 제한돼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다 단속을 맞닥뜨린 경우였어요.
특히나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은 열악한데요. 지난 7월 폭로된 지게차에 묶인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기억하시나요? 지난 2월 전남 나주 벽돌공장에서 벌어진 일이었죠. 이 같은 인권침해는 빈번하게 발생해요. 올해 초엔 네팔 국적 20대 청년이 장기간 폭언·폭행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경북 구미에선 폭염 속 공사현장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단축근무 없이 일하다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학대가 발생해도 ‘3개월 내 재취업’이란 조건 때문에 사업장 변경이 어려워 일터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빚, 열악한 노동 환경, 까다로운 출입국 제도가 ‘불법체류’의 굴레를 이루는 셈입니다.

“법무부, 니네가 마늘농사 지어라!”
불법을 막기 위해 이주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떨까요? 그러기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는 ‘필요한 존재’인데요. 지난 5월 경남 창녕군에서 법무부가 미등록 이주민을 단속하자 농민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나섰어요. “법무부 니네가 마늘농사 지어라”는 현수막이 마을 곳곳에 걸리기도 했지요.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업·제조업 분야에선 이주노동자 없인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해요. 이주노동자가 많이 모이면서 지역의 경제가 유지되는 측면도 있고요. 출생아가 점점 줄어드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은 ‘거스를 수 없는 미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필요로 하지만 받아들이진 않는’ 이주민 제도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와 함께 이주민을 향한 우리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요. 다행히 우리 국민이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인식은 개선되고 있는데요. 지난 6월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 ‘2024 국민다문화수용성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이 자신과 다른 민족·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주민을 수용하는 정도는 9년 만에 상승했다고 해요. 특히 성인보다 청소년의 수용 정도가 높았는데요. 학원·학교에서 이주민을 일상적으로 접해온 청소년들에게 이주민들은 ‘불법체류자’, ‘미등록 이주민’이란 어려운 용어 대신 그냥 ‘친구’였거든요.
우리의 말이 세상을 결정한다면
‘불법체류자’와 ‘미등록 이주민’의 차이는 어쩌면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불법체류자란 말엔 “법을 어겼다”라는 판단이, 미등록 이주민이란 말엔 “왜 법을 어기게 됐어?”란 질문이 포함되니까요. 판단은 단순한 결론이고 질문은 복잡한 과정입니다. 결론은 ‘지금’에 머물고 과정은 ‘다음’을 그리지요. 우리가 무엇을 말할 때, 우리는 어떤 세상으로 나아갈지 결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법체류자’의 세상과 ‘미등록 이주민’의 세상, 독자님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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