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공공계약은 조달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습니다. 독점은 항상 문제를 야기합니다. 이중가격 문제, 비효율성, 시장에 없는 물건을 사고파는 등의 다양한 문제가 발생해 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공공조달에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공연히 알고 있는 비밀이었습니다.
물품, 용역, 공사 계약은 모두 조달청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러나 조달청의 업무는 단지 물품 구매·공급 및 공사 계약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주요 원자재 비축사업, 정부 물품 및 국유재산 관리, 나라장터 관리까지 실로 방대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공전자조달을 담당하는 “나라장터” 플랫폼에는 6만9000여 공공기관과 56만9000여 조달업체가 이용하고 있습니다. 조달청에는 1118명이 근무 중입니다. 매우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이처럼 방대한 조달 업무를 소화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조달청도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습니다.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부정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도 시행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중가격 문제 해결을 위해 ‘다수공급자계약’(이하 MAS) 물품에 대한 시중가격 모니터링을 확대·운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조달청은 공공계약을 독점해야 하는가에서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근본적인 문제는 정보화 시대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한국에서 공공조달을 한 기관이 독점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점입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2015~2019년 조달청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분석을 통해 조달청 독점의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등에서도 동일 제품을 시중가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모든 장기적 독점은 부패 가능성을 높입니다. 조달청 자체의 부패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기관이 면피하거나 부패 소지가 있는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미국의 경우 2000년 7월, 민간 플랫폼 사업자를 연방 조달에 참여시켰습니다. 우선 아마존 등 3개 사입니다. 우리나라도 가구, 단순 사무용품, 컴퓨터 등 시중 유통되는 제품과 품질 차이가 크지 않은 품목은 민간 유통 플랫폼에 공개하여 준독점 구조를 완화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2000년 경기도와 서대문구는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독자적 조달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지난 7월 8일 국무회의에서 조달청 업무보고가 있었습니다. 정부 보도자료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는 비공개회의의 주요 발언이 소개되었습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백승보 조달청 차장은 “외청 중 가장 먼저 대통령께 업무보고를 드리게 된 상황을 엄중히 보고 있으며, 조달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국정 목표 달성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다양한 입장을 검토해 최적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조달행정체계 내부 경쟁을 강화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혁신조달 강화와 관련해서는 R&D 예산 증액만큼이나 AI 등 혁신기업의 물품과 서비스 구매 예산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 달라며, 새로운 기술과 제도를 통해 시장을 개척하려는 기업들을 정부가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역대 대통령 중 조달청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이미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에도 조달 물품 구매와 관련해 조달청의 독점 문제를 직접 지적하고 논쟁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으로 인해 조달청이 가장 긴장하는 부서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청 중 가장 먼저 업무보고를 진행한 것도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고 봅니다.
조달청의 <2025년 물품·용역·공사 발주계획>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 및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조달 건수는 10만5819건, 금액은 약 70조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올해 정부예산이 673조 원인 점을 감안하면, 공공조달 규모는 정부예산의 10%를 넘는 거대한 규모입니다.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부패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독점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검색만으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오늘날에는 시대착오적 행정일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것이 K-행정이 보여줘야 할 혁신입니다.
선진국의 선진행정이란 앞서 나간다는 뜻으로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독점하고 안전하게 통제하는 것은 추격자로서 후진적 행정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정부에서 조달행정은 근본적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 변화가 선진행정이 될지, 혼란으로 이어질지는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소개된 대통령의 발언은 중요한 시사점을 담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감사나 수사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 있다. 사후적 관점에서 이를 판단하려 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과감하게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조달청의 과감한 시도를 기대합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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