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노 터치'에서 입장에서 선회
러 자산, 유로클리어에 1900억 유로 묶여… 전 세계 동결 규모는 440조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벨기에가 러시아 동결 자산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벨기에 브뤼셀에는 국제예탁결제기구인 유로클리어(Euroclear) 본사가 있다. 전 세계 러시아 동결 자산은 2700억 유로(약 439조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중 2000억 유로 이상이 유럽에 묶여 있다. 유로클리어에는 1900억 유로(약 309조원) 정도가 동결돼 있다.

막심 프레보 벨기에 외무장관은 FT와 인터뷰에서 "러시아 동결 자산의 활용과 관련된 법적 위험을 모든 유럽연합(EU) 회원국이 공유한다면 벨기에는 러시아 자산 처리 방식의 변경에 대해 열려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려면 법적 견고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위험을 분산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벨기에 정부와 유로클리어는 그동안 러시아 동결 자산의 활용 방법 변경에 대해 단호한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다.
러시아 자산은 현재 압류가 아니라 동결된 상태이기 때문에 국제법적으로 소유권이 여전히 러시아에 있고, 러시아 동의 없이 이 자산을 마음대로 사용할 경우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유로클리어의 중립성과 신뢰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현재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주요 7개국(G7)은 러시아 동결 자산을 담보로 500억 달러의 대출을 일으켜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있다. 대출금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러시아 동결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충당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필요한 전비(戰費) 규모가 계속 커지면서 EU는 러시아 동결 자산의 적극적 활용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EU 집행위원회는 만기가 도래한 자산에서 생기는 현금을 보다 '위험성이 큰 투자'에 재투자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연설을 통해 "오늘 우리는 10대가 넘는 러시아 샤헤드 드론이 폴란드와 유럽 영공을 무모하고 전례없이 침범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유럽에 동결돼 있는 러시아 자산을 활용해 우크라이나 방어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러시아의 전쟁이다. 그리고 러시아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유럽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기반으로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새로운 해결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벨기에는 자산 원금 자체를 건드리는 방안에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프레보 장관은 "자산 몰수는 선택지가 될 수 없다"며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국제 금융 질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만약 이런 조치가 취해진다면 전 세계 국가들이 유럽 내 보유 자산이 정치적 이유로 몰수될 수 있다고 우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닭이 황금알을 낳고 있는데 이를 죽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현 상황을 협상 카드이자 장기적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로클리어는 보다 공격적인 투자 전략은 사실상 몰수에 해당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클리어는 작년 한 해 러시아 동결 자산에서 약 20억 달러 이상의 이자 수익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중 25%는 벨기에 정부가 법인세 명목으로 징수해 우크라이나 지원 자금으로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