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명동 거리는 초입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매출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은 10곳의 창구에서 동시에 계산이 이뤄져 대형마트를 방불케 했다. 3층 규모로 자리잡은 명동교자 신관 건물 밖에는 100m가 넘는 대기 줄이 늘어섰다.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인근 호텔 ‘소테츠 프레사 인 명동’ 로비에는 관광객들이 맡긴 캐리어가 가득했다.
이 호텔 관계자는 “최근 들어 다양한 국적의 투숙객이 늘었고 특히 중국인의 비중이 눈에 띄게 커졌다”며 “팬데믹을 거치며 오랫동안 저조했던 객실 예약률이 최근에는 평일 80%, 주말엔 90%까지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강수 명동거리가게회 총무는 “탄핵 선고 이후 여행객이 20~30% 늘었다”며 “중국 노동절 연휴와 일본 ‘골든 위크’가 겹쳐 회복세가 더욱 뚜렷하다”고 전했다.
이런 변화는 명동만의 풍경이 아니다. 같은 날 전통 관광 명소인 서울 삼청동도 활기가 뚜렷했다. 경복궁 인근이 4월부터 시작되는 성수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영향이다. 점심 무렵 찾은 한 분식집은 일찌감치 만석이었다. 가게 내부에선 동남아시아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번역기 앱을 켜놓고 음식을 주문했고, 서양인 노부부는 가게 바깥에 서서 떡꼬치를 먹고 있었다. 히잡을 두른 중동계 외국인들이 청국장집을 찾는 장면도 낯설지 않았다. 특유의 식감과 향 탓에 외국인이 꺼리던 떡볶이나 청국장이 자연스레 외국인 식탁에 오르기 시작한 셈이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중국 단체 관광객도 다시 깃발을 들고 거리를 누볐다.

외국인의 소비가 방문객 수보다도 빠르게 회복된 데는 한국 관광의 콘텐츠가 더욱 다양해지고 매력적으로 변한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관광업 현장에서는 외국인들이 이전보다 한국만의 특성에 주목하는 사례가 확실히 많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는 패키지 대신 배낭을 메고 출발하는 자유 여행이 늘어난 최근의 트렌드도 한몫했다. 한 서촌 한복대여점 사장은 “예전엔 관광객들이 진하고 어색한 색상의 한복을 많이 입었다면 요즘은 한결 단아하고 자연스러운 디자인을 선호하는 분위기”라면서 “단순한 동양풍이 아니라 ‘한국다움’을 체험하고 싶어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인력거를 몰며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 ‘나루(가명)’ 씨는 “여전히 많은 외국인이 한국에서 ‘도깨비’나 ‘호텔 델루나’ 같은 콘텐츠 기반 장소를 알고 찾아오지만 예전보다 더 문화적인 깊이를 원하는 경향이 느껴진다”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시선은 이제 서울의 낯선 구석까지 파고든다. 전통적인 관광지보다 현지인의 일상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를 선호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 성수동이 대표적 사례다. 이미 2011년 폐장한 놀이공원인 ‘용마랜드’나 1970년대 석유를 보관했던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같은 폐시설도 여행자들의 비밀 명소로 회자된다. 세계 최대 여행 플랫폼 트립 어드바이저에는 한밤중이나 새벽 시간대에 서울의 으슥한 곳만 돌아다니는 이색 투어상품도 등장해 호평을 받고 있다. 등산 역시 외국인 유행 코스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관련 장비를 대여해주는 서울 등산관광센터를 찾은 외국인의 수는 작년 한 해 동안 1만 2000명을 넘겼다. 올 들어 지난달 25일까지 북한산센터 외국인 방문객은 1742명으로 내국인의 2배다.
편리한 대중교통망과 치안, 외국인에게 친절한 한국 특유의 문화도 여전히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타이완에서 온 마크(45) 씨는 “한국인들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 어려움을 겪으면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몸짓을 섞어 가며 도와주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자정 작용도 주효했다. 이강수 명동거리가게회 총무는 “외국인들이 그간 바가지 요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점을 고려해 모든 상품에 가격표를 부착하고 있다”면서 “쓰레기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는 매대마다 50ℓ 종량제 봉투를 걸어뒀고 구청과 협의해 닭꼬치 등을 먹고 걸어가는 손님들도 분리배출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