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비법] 회사 자금을 대표가 사용해도 될까

2025-05-12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소규모 회사나 개인 회사에서 회사의 대표 또는 경영진이 업무 관련성이 모호한 상황에서 특별한 고민 없이 회사의 돈을 인출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회사 계좌를 일종의 개인금고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으나, 전후 사정을 들어보면 잘못된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아리송한 사례가 많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우선 회사의 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고, 이러한 행동을 문제로 여기지 않은 사람도 많다. 되레 “대표는 원래 자기 돈 안 쓴다. 회삿돈도 못 쓰면 회사를 왜 운영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 경기가 불황이다 보니 소규모 회사가 이익을 남기기 어렵고, 배당·급여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기에는 재원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회사의 비용으로 처리해 생계를 유지하는 대표도 많다.

다음으로 소규모 회사에선 창업 당시 회사의 자산과 창업자의 자산을 구분하지 않는 상황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창업자의 부동산에 회사가 무상으로 임차하는 등 창업자의 희생으로 회사를 설립·운영하면, 창업자가 회사의 자산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소규모 회사는 회사의 주주와 경영진이 친밀한 관계에 있고, 그래서 회사 자금을 인출하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개인적인 용도에 의한 회사 자금 사용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회사 자금을 개인적인 사용으로 할 경우 법적으로 엄청난 책임을 질 수 있다. 주변에 흔히 있는 사례고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앞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한 하급심 판결에서 “대표이사가 회사를 위한 지출 이외의 용도로, 거액의 회사 자금을 가지급금 등의 명목으로 인출·사용함에 있어 이자나 변제기의 약정이 없음은 물론 이사회의 결의 등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경우 통상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대표이사의 지위를 이용해 회사 자금을 사적인 용도로 임의로 대여·처분하는 것과 다름없어 횡령죄로 구성한다”고 판시한 사례가 있다.

자금 사용 용도가 업무에 있음을 입증하지 못하고, 회사 내부 절차도 거치지 않았으며, 다른 거래에 비해 유리한 대여 조건을 적용했다면 대표이사가 설령 가지급금의 형식을 거쳤다고 해도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개인이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1인 회사나 가족 회사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급심 판결은 “주식회사의 주식이 사실상 1인 주주에 귀속하는 1인 회사에서도 회사와 주주는 분명히 별개의 인격이어서 1인 회사의 재산이 곧바로 그 1인 주주의 소유라고 볼 수 없다. 사실상 1인 주주라고 하더라도 회사의 자금을 임의로 처분한 행위는 횡령죄를 구성한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분쟁은 보통 회사 내부의 다툼에서 시작된다. 누가 회사의 자금을 언제, 어떠한 용도로 사용했는지는 동업자, 임직원, 경영진 등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회사 내부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다가 경영권 갈등, 동업자 간의 분쟁, 퇴사한 임직원의 제보 등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후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는 사태가 발생한다. 동업자가 구두 상으로 회사 자금 사용을 승인하거나 평소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경영권 분쟁 등이 발생하자, 과거 회사 자금을 사용한 내역을 전부 뽑아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의자로 입건되더라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고, 수사기관도 전후 사정을 감안해 융통성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와 반대로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 대단히 치밀하게 수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소규모 회사라도 정기 세무조사는 받으므로 개인적인 용도로 회사 자금을 사용한 사실을 가리기 위해 간이영수증을 수집해 비용 처리를 하거나, 심지어 청첩장을 모아 접대비 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수사기관은 이와 같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숨기려는 노력을 부정적으로 본다.

객관적인 자료를 보면 규칙적이고 정기적으로 회사 자금을 빼돌린 흔적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카드깡’이나 ‘상품권깡’을 하려면 실체가 불분명한 거래처와 반복적으로 거래를 하게 된다. 이러한 거래가 1회에 그치는 경우는 없으므로 정기적, 반복적으로 특정 거래처와 특정 금액으로 거래를 한 흔적이 남는다. 수사기관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도 가벌성이 높다고 본다.

회사의 경영진이 가수금 명목으로 회사의 자금을 인출하는 경우 설령 가수금을 변제하거나 일정 기간 내에 과부족 금액을 정산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심지어는 회사에 대해 받을 채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복적으로 가수금 거래를 하는 것은 횡령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

원리 원칙대로라면 회사 자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일단 일이 벌어졌고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수사기관에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일 수 있다. 사용 당시 주주 등 구성원이 전부 승인한 일이고, 어느 정도는 회사의 업무와 운영에 관련이 있는 지출이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이렇게 소명해도 그 후 벌어지는 전개는 사건마다 다르다. 평소 불만이 있던 임직원이 ‘불합리한 지시에도 어쩔 수 없이 무단 사용에 협조했다’는 제보를 하거나 거래처가 리베이트를 요구 받았다고 하는 등의 불만을 제기해 사건이 수렁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고소·고발 등의 동기가 동업자·경영자 간의 사적이고 감정적인 분쟁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 수사기관이 어느 정도 선처를 하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는 주어진 사실과 증거에 따라 대응 전략을 짜는 사람이므로 어떠한 상황에 놓이든 설명할 논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다만, 의뢰인의 평판이나 평소 베푼 은덕에 따라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발생한다면 사건의 난이도는 천양지차로 벌어지게 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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