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옥중에서 작성한 유묵(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이 국내로 반환됐다. 경기도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안중근 의사 유묵 귀환 프로젝트’를 추진, 이중 ‘長歎一聲 先弔日本(장탄일성 선조일본)’을 지난 5월 말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고 14일 밝혔다. 경기도는 안 의사의 또 다른 유묵인 ‘獨立(독립)’의 귀환도 추진하고 있다.
폭 41.5㎝, 길이 135.5㎝ 크기의 명주천에 쓴 ‘장탄일성 선조일본’은 안 의사가 중국 뤼순(旅順) 형무소에 수감됐던 1910년 3월 쓴 글이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뤼순 형무소에 수감생활을 하다 같은 해 3월 26일 순국했다.
이 유묵은 “큰 소리로 길게 탄식하며, 일본의 멸망을 미리 조문한다”는 의미로 죽음을 앞두고도 흔들림 없었던 안 의사의 기개와 역사관, 세계관이 담겼다. 안 의사는 이 유묵을 당시 뤼순 형무소와 재판부를 관장하던 일본제국 관동도독부의 고위 관료에게 건넸는데 이후 그 후손들이 보관해왔다. 이 유묵은 2000년 일본 교토시에 있는 해당 관료 후손의 집에서 발견됐다. 경기도 관계자는 “‘장탄일성 선조일본’은 아직 국내에 한 번도 실물이 공개된 적이 없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가 귀환을 추진 중인 ‘독립’은 1910년 2월 안 의사가 작성해 일본인 간수에게 건넨 것이다. “나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죽는다”는 굳은 신념을 두 글자로 응축한 안 의사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유묵은 해당 일본인 간수의 후손이 보관하다 일본 교토 류코쿠대학이 위탁·보관하고 있다. 국내에도 몇 차례 전시가 됐었으나 완전한 귀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 유묵은 일본인들의 요청으로 안 의사가 작성했다. 안 의사의 언행과 인품에 감복한 일본인들이 직접 비단과 종이를 사서 안 의사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유묵엔 약지 일부가 없는 안 의사의 왼손 장인(掌印)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외에서 확인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약 60여 점이다. 이 중 31점이 보물로 지정됐다. 특히 ‘장탄일성 선조일본’과 ‘독립’은 안 의사의 항일정신과 동양평화 사상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그 가치가 국보급이라고 경기도는 설명했다.

경기도는 약 20년 전 일본에서 안 의사의 유묵을 최초 발견한 민간 탐사팀에게서 일본 측 소장자의 국내 반환 의사를 확인하고, 지난 3월부터 귀환을 추진해왔다. 국내로 들어온 ‘장탄일성 선조일본’은 현재 경기도와 일본 소장자 간의 협상을 중재해 온 국내 민간 탐사팀이 보관 중이다.
아직 일본에 있는 ‘독립’을 비롯한 두 유목 모두 경기도와 광복회 경기도지부가 우선 구매 협약서를 확보해 협상 중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유묵의 귀환이 무산되면 개인 소장자나 해외 수집가에게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역사적 책임감을 갖고 귀환 프로젝트에 임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안중근 의사의 고향(황해도 해주)과 가까운 DMZ 지역에 ‘안중근 평화센터’ 조성도 추진한다. 평화센터는 안중근 기념사업은 물론 추가 유묵 발굴수집, 동아시아 평화 교류를 위한 연구 및 포럼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한편 경기도는 이날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7명을 초청해 독립운동 정신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날 행사엔 중국 연해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교육자 계봉우 선생의 손녀 계 다찌야나(75)씨와 의열단원 이동화 선생의 외손녀 주 용용(68)씨, 김산의병의 참모장으로 의병의 구심점이었던 왕산 허위 선생의 손자 허 블라디슬라브(75) 씨 등이 참석했다. 김종진 선생의 손자인 김호동 광복회 경기지부장과 오희옥 지사의 아들인 김흥태 씨, 안중근 의사의 외 현손녀인 최수아 어린이와 그 부친 최재황씨 등 독립유공자 후손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