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여름철이면 더위 못지않게 기승을 부리는 것들이 있는데 칡넝쿨도 하나이다. 도로변에도 칡넝쿨이 자라 전봇대를 휘감아 올라가거나 나무들을 덮어 고사시키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밭두렁에도 들판에도 숲에도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라서 일주일에 1m 이상도 자란다고 하니, 그 피해가 만만치 않다.
이렇듯 칡넝쿨은 넓은 잎사귀로 식물들을 덮어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있고,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 안전에도 위협을 주고 있다.
칡을 제거하기 위해 사람들이 애를 쓰고 있으나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시 휘감아 올라간다. 우리 집 주변 냇가도 칡넝쿨이 온 나무를 덮고 있다. 산책할 때면 가위를 들고 가서 길가로 뻗은 넝쿨만이라도 자르고 있으나 그 무성함을 막을 수가 없다.
사람들에게 골칫덩이가 된 칡넝쿨은 한때 참 유용한 식물이었다. 뿌리를 캐서 녹말을 만들어 양식을 만들어 먹었고,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먹었던 구황식물이기도 했다. 또 소를 집에서 키울 때는 여름철이면 칡넝쿨이 먹이가 되기도 했는데, 그 줄기는 밧줄로, 또는 운반 도구인 삼태기를 만들거나 구덕을 만들어 유용하게 사용했다.
한데 이제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이고, 또 소를 집에서 키우지도 않게 됐으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나일론 끈과 플라스틱 용품들로 대체되다 보니, 칡넝쿨은 더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그렇게 쓸모가 없어진 칡넝쿨은 빠른 성장 속도로 퍼져 나가 제주 어디에서나 기세를 부리고 있다. 이 칡넝쿨처럼 한때는 쓸모 있는 것들이었지만 지금은 골칫덩이가 된 것들이 어디 한둘뿐일까.
앞을 내다보지 못한 선택으로, 혹은 변화를 받아들여져야 하는데도 안주하다 보니 지금은 퇴보하거나 아니면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세상이 대처하기에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고 들으며 살아왔기에 저축이 미래를 보장해 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점차 저축해도 살아가기에는 어림없는 세상이 됐다. 경제적인 대비도 방법이 다 다르다. 은행에 돈을 맡기고 이자로 불리기 위해 저축하는 것으로는 방법이 아님을 알기에 어떻게,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선택해야만 한다.
비단 저축뿐만 아니라 삶도 순간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어 선택이 옳았는지 잘못됐는지도 순전히 내 몫이다. 그렇다보니 선택 장애가 생겨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득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살아 있는 삶 자체가 고통으로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뿐만 아니라 건강과 무엇보다 나와 친구가 돼 줄 그 무엇을 꼭 저축해 둬야만 언제든지 외롭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무미건조한 삶이 아닌 오늘도 살아야 하는 이유이자 원동력이 될 그 무엇을 이제부터 저축해야만 하는 시점에 서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