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열린 PGA 챔피언십을 앞두고 실시된 테스트에서 남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와 2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의 드라이버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두 선수 모두 예비 드라이버로 대회를 치렀는데 셰플러는 우승했고, 매킬로이는 저조한 성적을 거둔 뒤 인터뷰조차 거부했다. 매킬로이의 인터뷰 거부로 부적합 드라이버 논란은 여진이 더 오래 이어졌다.
그러면 부적합 드라이버는 불법 또는 부도덕한 장비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이다. 이에 대한 미국 골프전문 매체들의 설명을 정리해봤다.
1일 미국 야후스포츠에 따르면 남자 골프 세계 랭킹 3위 잰더 쇼플리(미국)는 최근 SNS에 “부적합 드라이버는 (야구의) 코르크 배트(Corked Bat)와는 다르다”는 글을 올렸다. 코르크 배트는 내부를 비우고 코르크를 채워 가볍고 빠르게 스윙할 수 있도록 만든 불법 배트다. 하지만 부적합 드라이버는 오랫동안 사용함에 따라 어느 순간 기준치를 넘는 것이라면서 “대중이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쇼플리도 2019년 디오픈 기간에 실시된 테스트에서 그의 드라이버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받은 적이 있다.
골프위크에 따르면 매킬로이와 셰플러의 드라이버가 테스트에서 탈락한 원인은 ‘CT 크립(CT creep)’이라는 현상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골프 장비 용어로 ‘특성 시간(Characteristic Time)’의 약자인 CT는 임팩트 시 공이 클럽 페이스에 닿는 시간을 마이크로초로 측정하는 단위다. 접촉 시간이 길어질수록 볼 스피드가 빨라지고 드라이버 비거리가 늘어난다.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239마이크로초의 제한을 정했으며, 제조 허용 오차는 257마이크로초까지다.
‘CT 크립’은 드라이버의 클럽 페이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유연해지면서 허용 범위를 넘어서는 현상이다. 주로 반복적인 충격, 특히 고속 스윙으로 인한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며 클럽 페이스의 탄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특히 매킬로이나 셰플러, 쇼플리처럼 빠른 스윙을 하는 선수들이 오랫동안 사용할 때 일어난다.
골프다이제스트는 드라이버 테스트 기계를 ‘욕실 저울과 병원 저울’에 비교하며 부적합 드라이버가 부정 행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제조 회사의 기계로 테스트 했을 때는 CT 수치가 허용 오차 안에 있었는데 USGA의 기계로 테스트했을 때는 오차 범위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오래 사용할수록 ‘CT 크립’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선수는 자신의 드라이버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지만 공식 테스트에서는 오차 범위를 넘을 수도 있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 오브 아메리카)도 PGA 챔피언십 기간 중 발표한 성명에서 “선수는 클럽이 적합성 기준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며 수천 번 타격한 것 외에는 클럽이 적합성 기준을 벗어난 것에 대한 책임이 없다. 필요한 경우 헤드를 교체하도록 요청받으며 모두 문제없이 교체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 셰플러는 드라이버를 교체한 뒤로도 좋은 성적을 냈는데 매킬로이는 왜 성적이 곤두박질쳤을까. 골프다이제스트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거장이 사용하는 악기에 비유했다. 매킬로이가 PGA 챔피언십에서 사용한 테일러메이드 Qi10 드라이버는 부적합 판정을 받은 드라이버와 같은 모델이다. 하지만 같은 드라이버는 아니다. 매킬로이 같은 최상위급 선수는 미세한 차이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골프다이제스트의 얘기다.
그러면 주말 골퍼들의 드라이버에도 ‘CT 크립’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까. 골프위크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봤다. 주말 골퍼들은 투어 프로 수준의 스윙 속도,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골프위크는 선수라고 하더라도 대학 선수 수준에서는 ‘CT 크립’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