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늑대 해설사로 25년 일지 기록
복원 사업으로 들여온 14마리
공원에 정착하는 이야기 담겨
아버지·의붓아들의 대립 등
다큐멘터리 보는 듯 ‘생생’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늑대 8번이 있다. 덩치 큰 형제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작은 잿빛 늑대다. 그는 먹잇감으로 잡아온 고기도 항상 맨 나중에 먹었다. 서열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8번에겐 누구도 엿보지 못한 영웅의 자질이 있었다. 어느 날 형제들이 숲에서 커다란 회색 곰이 사냥한 새끼 엘크를 빼앗다 곰에게 쫓기게 된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가장 뒤처져서 달리던 8번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곰과 정면으로 맞선다. 곰은 깜짝 놀라 움직임을 멈췄고, 그사이 형제들은 멀리 달아날 수 있었다.
옐로스톤의 늑대 해설사였던 저자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의 명언을 떠올린다. “영웅은 아무도 보지 않아도 올바른 행동을 한다.” 며칠 후 저자는 8번이 무리의 선두에서 암컷 무스를 쫓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영웅의 탄생이다.
사실 8번의 고향은 캐나다다. 1995년 1월, 옐로스톤 늑대 복원 사업을 위해 현지에서 포획돼 다른 야생 늑대 열세 마리와 함께 공원에 발을 들였다.

울프 8
릭 매킨타이어 지음·노만수 옮김
사계절 | 352쪽 | 2만3000원
1872년 미국은 와이오밍주, 몬태나주, 아이다호주에 걸쳐 있는 8933㎢의 대지를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옐로스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혜의 자연을 보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당시 시민들은 물론 공원관리국도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가 다른 동물들의 삶을 파괴하고 관광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해로운 동물이라 생각했다. 늑대 포획이 시작됐고, 1926년까지 옐로스톤의 모든 늑대를 사냥했다.
생태계의 한 고리가 사라지자 자연은 급속도로 무너졌다. 포식자가 사라진 뒤 엘크와 들소 같은 초식동물이 초원의 풀과 강가의 새싹을 먹어치웠다. 풀과 나무가 사라진 들판으로 철마다 강물이 범람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실수를 깨닫고 생태계 재건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 늑대 복원이 있었다.
영웅에겐 그의 일대기를 기록할 관찰자가 필요하다. 저자가 이 역할을 한다. 늑대 연구자로서 오래전부터 일해온 그는 옐로스톤의 늑대 해설사로 부임한다. 우여곡절이 있었다. 정부가 막판에 해설사에 대한 예산 지원을 끊자 매킨타이어는 자신의 책 <늑대사회> 홍보 사인회에서 직접 옐로스톤 해설사 배치에 필요한 기부금을 모은다. 마지막 강연에서 드디어 목표 금액이 모두 모이고, 그는 옐로스톤에 발을 들여놓는다.
매킨타이어는 옐로스톤에서 25년간 일하면서 2000년 6월부터 2015년 8월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6175일 연속으로 야외 관찰에 나섰다. 늑대를 관찰한 횟수는 총 9만9937회에 이르고 매일 기록한 관찰일지는 1만2000쪽에 달한다.
이 같은 열정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8번을 포함한 열네 마리의 늑대가 처음 옐로스톤에 발을 들이고 그들이 공원에 정착하는 이야기가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심도 있게 펼쳐진다.
처음 늑대들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만 머문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레인저들이 울타리 문을 열어 두지만, 늑대들은 두려움에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문이 아닌 곳에 구멍을 뚫고 사슴 사체를 가져다 둔 뒤 늑대를 유혹해 공원으로 끌어낸다.
옐로스톤의 동물들에게도 늑대는 낯설었다. 엘크들은 늑대를 만나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다가간다. 엘크도 늑대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던 것이다.
장대한 자연의 한 부분으로 성장해가는 늑대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중심은 알파 수컷(무리의 리더)으로 성장한 8번과 그의 의붓아들인 늑대 21번이다. 이야기의 막바지에 서로 다른 무리의 리더가 된 8번과 21번이 부딪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자신의 무리를 상대 무리에게 잃은 만큼 회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자신을 키워낸 의붓아버지와 싸워야 하는 21번, 늙어서 4개의 송곳니 중 두 개는 사라지고 하나는 부러진 8번이 쫓고 쫓기는 상황에 대한 묘사는 생태계의 일부로 살아가는 개체가 마주하는 비정한 운명처럼 느껴져 감동을 준다.
전반적으로 집요한 관찰을 세심한 묘사로 풀어내 소설만큼 읽는 맛이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생존 투쟁한 영웅들의 서사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