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질녘, 야곱은 형의 노여움을 피해 길을 떠났다. 먼 길 위, 그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고, 발밑의 들풀과 돌멩이는 차갑게 발목을 스쳤다. 바람은 쓸쓸하게 귓가를 스치고, 해가 저물며 하늘은 붉은 잿빛으로 물들었다. 몸을 누일 자리조차 없어, 그는 거친 들판 한가운데 주저앉아 돌을 베개 삼았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심장은 조급하게 뛰었고, 밤의 적막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그곳에서 그는 환상을 본다. 하늘에서 사다리가 내려오고,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빛의 길을 만들었다. 어둠 속을 뚫고 내려오는 한 줄기 빛처럼, 사다리는 땅과 하늘을 이었다. 달빛조차 닿지 못한 들판 위에서, 사다리의 빛이 야곱의 깊은 곳까지 스며들 때쯤 두려움은 가라앉고, 희망의 온기가 차올랐다. 그는 숨을 죽인 채 그 장면을 바라보며, 그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불렀다. 차갑고 어두웠던 들판 한가운데에서, 그는 빛나는 위로와 보호,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작은 약속을 느꼈다.
새 정부가 처음 내놓은 부동산정책은 대출 규제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를 놓고 청년세대의 ‘주거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비판이 있다. 무주택에서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지는 길은 단순한 자산 축적이 아니라, 삶의 안정과 미래를 향한 희망의 여정이다. 그러나 현실의 주거 사다리는 건강하지 않다. 대출 제한은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디딜 계단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집값의 급등이다.
가격의 안정 없는 사다리는 신기루가 되어버린다.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전제에 갇혀 있는 사다리, 집값은 오를 것이니 빚을 감수하고라도 올라타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런 사다리는 결국 일부 기득권 세대만을 위한 도구일 뿐, 진정한 희망을 담지 못한다. 야곱의 사다리가 희망의 상징이 된 이유는 인간이 위로 오르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야곱의 사다리는 오르기 위한 욕망이 아닌 위에서 내려오는 은혜와 돌봄을 담았다.
오늘날 주거 정책은 그 본래의 의미를 잊고 있다. 무리하게 오르게 만들면서도, 내려올 때 안전하게 지켜주는 손길은 없다. 완충 장치 없는 사다리는 희망이 아니라, 위험과 불안을 담은 길이 될 뿐이다.
진정한 주거 사다리는 무조건 올라가는 길이 아니다. 누구나 천천히,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계단이어야 한다. 집값이 안정되고, 모두에게 밟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때, 그 사다리는 단순한 자산의 도구가 아니라, 야곱이 본 사다리처럼 위로부터 내려오는 은혜와 보호, 그리고 희망을 담은 길이 된다.
조급히 올라야만 하는 사다리보다, 천천히라도 모두가 함께 오를 수 있는 계단이 필요하다. 집값이 안정되고, 발 딛는 자리가 단단해질 때 비로소 주거의 길은 불안이 아닌 희망이 된다.
강귀만 부동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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