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효자로에 위치한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1층 전시장.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무늬가 가득한 병풍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일본 교토(京都)의 전통 목판 인쇄 카라카미(唐紙) 장인 가도 고(嘉戸浩)가 한국의 전통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뒷면에는 파도 문양을 그려 바다 건너 양국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임을 상기시킨 것이 특징이다.
이 병풍은 교토에 있는 비영리단체 투모로우 대표 도쿠다 가요(徳田佳世·54)와 온지음이 협업한 문화 프로젝트 ‘씨 브릿지’(Sea Bridges)의 일환으로 공개됐다. 한·일 양국의 의식주 문화가 과거로부터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는지를 탐구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다.
지난 6월 교토 북부 교탄고(京丹後)의 해안 마을 레스토랑 나와야(縄屋)에서 한·일 양국 전통 식재료와 조리법을 재해석한 식문화와 상차림을 제안하는 ‘다이닝 콜라보’를 마쳤다.
이번 전시는 두 번째 프로젝트로 3일부터 10월 31일까지 양국의 배첩장인들이 협업해 제작한 두 가지 병풍과 한·일 양국이 삼국시대부터 바다를 통해 교류한 흔적을 담은 식기류 등의 공예품을 소개한다. 독특한 문양의 손잡이가 인상적인 가야 시대의 잔을 재현한 머그컵, 고려시대 국화무늬 청자 잔을 닮은 식기 등을 볼 수 있다.
전시 마지막 날엔 온지음 레스토랑에서 6월 교토 레스토랑에서 선보였던 음식들을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이 프로젝트에는 양국의 과거 식문화를 재해석해 미래 세대에 영감을 주겠다는 뜻을 담아 ‘아워 퓨처 밀 2030’(Our Future Meal 2030)이란 제목을 붙였다.
중앙화동재단이 운영하는 온지음은 한국 전통 의·식·주 문화에 담긴 가치와 정신을 계승·현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도쿠다는 지역 공예가·셰프 등과 함께 공간을 꾸미고, 지역의 정신이 담긴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다.
2일 온지음 사옥에서 만난 도쿠다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문화와 예술을 통해 평화를 추구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라며 “(한국과 일본) 서로의 문화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다른 문화를 포용하며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재해석하기에 더없이 좋은 프로젝트”라고 반겼다.
그는 “삶은 결국 작은 기억들의 축적이라 생각한다”며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어떤 전시를 보는 지가 모여 존재의 이유를 만든다. 좋은 음식과 좋은 예술은 이처럼 같은 동기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작가 선정은 프로젝트를 제안한 온지음측이 맡았고, 투모로우 재단이 구체적인 진행을 담당했다. 도쿠다는 “두 기관과 작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작업을 위해 나무 하나를 고르는 과정에서도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씨 브릿지’ 프로젝트는 내년엔 차를 주제로 한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도쿠다는 “온지음과의 협업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평화와 협력에 대한 개인적 소망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며 “우리는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둔 아시아의 이웃이니, 본질적인 우정을 쌓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