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는 기후 위기의 주범? 물질 순환의 큰 틀로 다시 보니[BOOK]

2025-09-12

탄소라는 세계

폴 호켄 지음

이한음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탄소라는 세계』은 분명 교양과학서이지만, 단지 과학서로만 규정하면 피상적 스케치에 불과한 책으로 보이기 쉽다. 심우주에서 발생하는 핵융합부터 곰팡이까지, 방대한 스펙트럼을 한 권에 간결하게 담아낸 덕에 그 스케치만으로도 충분히 감상할 가치가 있지만 말이다.

지은이의 삶 역시 이와 닮았다. 그는 민권운동가(마틴 루터 킹의 몽고메리 행진을 지원한 몇 안 되는 백인 자원봉사자였다)이자, 사업가이자, 경영 컨설턴트 겸 경영학 교재 저자이자, 환경운동가다. 얼핏 서로 모순된 듯한 여러 정체성을 한 몸에 구현한 셈이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책 중 최근 3권을 모아보면 방향성이 보인다. 『플랜 드로다운』(2019)에서는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솔루션을 100가지 제시하고 각각을 계량적으로 평가했다. 『한 세대 안에 기후위기 끝내기』(2022)는 기후 위기를 해결할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조속한 행동을 촉구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 이번 책에서는 ‘탄소’라는 원소 자체를 주제로 삼아 언어와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다. 정책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고의 근본을 흔드는 데 주력한다는 점에서 대미를 장식한다.

얼마나 성공적인가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입증과 설명보다 예시와 설득에 주력한 전개와 문체는 깊은 호기심을 해소해주기보다 호기심의 씨앗을 뿌리고 물만 적신다. 때로는 메마른 땅으로 남겨둔 부분도 눈에 띈다. 그렇다면 다른 책이 더 나을까? 지식과 설명을 위해서라면 그렇다. 하지만 과학은 해소되지 않는 호기심을 먹고 자란다. 호기심의 싹이 어떤 방향으로 뻗어가는지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지은이는 첫째, 탄소를 적대적 온실가스의 근원이자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여기는 풍조에서 벗어나 물질 순환의 큰 틀에서 바라보자고 설득한다. 탄소가 생명의 매개자라고 강조하는 부분은 신비주의적 자연숭배를 부추길까 염려도 되지만, 전작들과 같이 읽는다면 그런 함정에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민속지식의 가치를 강조하는 대목도 실험실의 보편적 지식이 현장에 적용될 때는 항상 로컬 지식에 힘입는다는 지난 두 세대에 걸친 과학기술학 연구들을 상기한다면 오히려 훌륭하다.

지은이가 여러 강연에서 강조하듯 기후위기는 기후가 일으킨 위기도, 기후가 피해를 당하는 위기도 아니다. 인류가 일으키고 인류가 당하는 위기이다. 자연과 기후는 인간의 행위를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반사판 역할을 한단다. 그렇다면 자연의 물질 순환을 막고 통제하는 방책들보다는 자연의 물질 순환에 편승하는 방책들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터. 이것이 지은이가 설득하고자 하는 두 번째 주장이다.

두 주장에 적극 찬동하지 않을지라도 곳곳에 흥미로운 사례와 평가가 산재해있다. 편안히 읽다가 그런 대목에서 갸우뚱해보고 확인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현재 예일대학으로 옮긴 량빙 후가 개발한 수퍼우드가 한 예. 웬만한 철강이나 콘크리트를 대체할 수 있다는데, 목재를 수산화나트륨 용액에 삶았다가 압축해서 만들고, 가열 압축성형이 가능하단다. 널리 보급된 기존 기술을 재활용하는 만큼 값싸고 빠르게 널리 보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첨가재를 넣으면 투명해진다. 대나무로 수퍼우드를 만든다고 가정하면 전 세계 농지의 0.01%만을 할애해서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인 17억톤을 제거하고 1.6억톤의 탄소를 추가로 격리할 수 있단다.

탄소포집기술과 균류, 즉 곰팡이와 버섯들의 능력을 비교한 대목도 흥미롭다. 대기 중에 흩어진 이산화탄소 포집에서 탄소포집 공장보다 균류가 월등하고 값싸단다. 그런 거친 추산이 그대로 실현될 리는 없겠지만, 자연에 편승해서 경제성과 실용성을 더 잘 추구할 수도 있다는 관점은 값지다. 경제와 과학을 냉혹하다고만 폄훼하는 신비주의자들은 엄두를 못 낼 기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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