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 조홍제 스칼러십
기술인재를 미래세대 리더로

배관공과 전기기사. 이른바 ‘뿌리 산업’의 기술 전문가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최근 인터뷰에서 “AI 인프라의 급격한 확장으로 숙련 기술직 수요가 수십만 단위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골드러시’에 비유할 정도로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포천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은 지난해 2427억 달러(약 353조원)에서 2032년 5848억 달러(약 852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데이터센터 공급이 2010년 이후 연평균 20.3% 증가했다.
데이터센터는 AI가 학습하고 추론하는 공장 역할을 한다. AI가 산업의 자동화를 이끈다지만, AI 인프라를 설계·구축하고 유지 보수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결국 숙련 기술인력이 없다면 AI 성장세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켄 골드버그 UC버클리 산업공학과 교수 겸 AI연구소 위원장은 “골드러시에 금을 캐는 사람보다 곡괭이와 삽을 판 사람이 돈을 벌었듯 AI 확산에서도 반도체와 인프라 공급자가 가장 확실한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인력 공급이다. 그간 블루칼라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 탓에 현장 숙련 기술자 부족과 고령화 현상을 국내외 모두 겪고 있다.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은 이러한 현장 기술자를 양성하고 공급하기 위한 장학사업 ‘만우 조홍제 스칼러십’을 지난해 본격 출범했다.
올해 1기 수료생 20명을 배출했고 지난 8월에는 규모를 키워 2기 장학생 30명을 선발했다. 강혁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장학사업이 학력 기반인 데 반해 ‘현장 기술’을 갖춘 인재들을 지원하는 것에서 차별점을 뒀다”며 “국내 제조업 현장에 필요한 인재들을 키우고 육성하면 대한민국 뿌리산업의 현장 기술력도 높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기술의 가치를 복원하다
‘만우 조홍제 스칼러십’은 민간 재단에서 주도하는 국내 유일의 기술인재 장학사업이다. 효성그룹 창업주 고(故) 조홍제(1906~1984)가 강조한 ‘기술중심, 사람중심’의 기업가정신을 이어 산업현장의 실무형 기술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목표다.
만우 조홍제는 효성과 한국타이어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우리나라 창업 1세대다. 그는 1962년 효성물산을 시작으로 1966년 동양나이론을 설립했고, 1971년에는 민간기업으로는 국내 최초 부설연구소인 효성기술원을 세워 소재기업 효성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평소 “몸에 지닌 작은 기술이 천만금의 재산보다 낫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 향후 신기술 도입과 공장 증설에 제약받지 않으려면 독자 기술로 공장과 설비를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학사업은 한국폴리텍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재단은 “조홍제 회장의 기술중심, 사람중심, 늦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만우(晩愚·늦되고 어리석다) 정신에 맞는 인재를 발굴하는 사업”이라며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에게 생활비와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국내 주요 산업 분야에 필요한 실무형 기술인재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단은 사업 첫해인 지난해 장학생 20명을 선발해 1인당 연간 2000만원, 연간 4억원 규모의 장학사업을 진행했다. 올해 선발된 2기는 장학생 수를 30명으로 확대하면서 지원 규모도 6억원 수준으로 키웠다. 장학생에게는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비와 자기계발비가 지급된다. 또 인문·사회·경제 등의 소양을 기를 수 있도록 매월 리더십 교육과 면접 컨설팅을 제공하고 선진 기술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해외연수 기회도 제공했다.
지난해 첫 장학생 모집에는 전국 25개 한국폴리텍 캠퍼스에서 106명이 지원해 경쟁률 5.3대1을 기록했다. 2기 장학생으로 선발된 박선아(27)씨는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다가 진로를 바꿔 인천캠퍼스 메카트로닉스과에 입학했다. 그는 “나만의 기술을 갖고 있어야 변화하는 사회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며 “현장 기술직이 아직 사회적으로 환영받는 직종은 아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술명장을 꿈꾸는 청년들
폴리텍대 부산캠퍼스에 다니는 1기 장학생 이지훈(26)씨는 최근 현대차에 합격해 출근을 앞두고 있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폴리텍대에 들어가 기계시스템을 전공했다. 이씨는 “강의실과 실습장, 기숙사를 오가는 반복된 생활에서 스칼러십 프로그램이 큰 자극이 됐다”며 “전국에서 선발된 다른 장학생과 함께 매달 교육을 받고 의견을 나누면서 기술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폴리텍대에 입학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으로 선택하는 경우다. 또 하나는 이지훈씨처럼 다른 대학에 다니거나 직장 생활을 하다가 폴리텍대에 입학하는 경우다. 폴리텍대에 따르면, 입학생 평균 연령은 지난 2019년도 21세에서 매년 조금씩 올라 2024학년도에 23.7세로 집계됐다. 만 23~30세 입학생 비율도 43.4%로 처음으로 40%대에 접어들었다. 같은 기간 타대학 중퇴, 졸업 후 폴리텍대에 입학한 학생 비율도 15%에서 23.3%로 크게 늘었다.
AI 지탱하는 뿌리산업 … 청년 기술인력이 국가 경쟁력 좌우한다

광주캠퍼스의 전예성(23)씨는 용접 기술을 전공한 장학생이다. 전씨는 졸업 전 볼보코리아에 취업해 굴착기 생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해외연수로 미국의 포드 공장과 빅테크 기업들을 탐방하면서 외국계 기업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 해봤다”면서 “글로벌 숙련공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커졌고, 그 꿈을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장학생들은 지난해 12월 미국 디트로이트의 포드 루즈 전기차 공장, 제너럴모터스(GM) 르네상스 센터를 견학하고, 필라델피아의 농업 스타트업 조르디(ZORDI), 뉴욕의 구글·메타 오피스를 방문해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다.
장학생들에게 ‘대한민국명장’은 꿈의 칭호다. 대한민국명장은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산업 현장에서 15년 이상 종사한 최고 수준의 숙련 기술자에게 부여하는 자격이다. 1986년 처음 만들어져 올해까지 719명이 받았다. 이 가운데 기계·금속·화공·전기전자 등 제조업 분야 기술명장은 400명 수준이다. 2기 장학생으로 선발된 강성혁(25)씨는 “돈보다는 명예, 한 분야의 명장이 되는 게 꿈”이라며 “학위를 받고 현장에서 기술을 연마한 뒤에 석사와 박사 과정에도 도전해 기술을 공유하고 확산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국가기술 자격증을 취득하는 2030세대도 크게 늘고 있다. 기술 수준에 따라 기능사부터 산업기사, 기사, 기능장, 기술사 순으로 구분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국가기술자격통계연보에 따르면, 기사 취득자 중 2030세대는 2020년 7만8359명에서 2024년 10만6128명으로 1.3배 늘었다. 보다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기능장의 경우 2020년 2087명에서 2024년 2994명으로 약 43.4% 증가했다.

블루칼라 없이 빅테크도 없다
‘AI 붐’은 블루칼라의 귀환으로 연결된다. 미국 노동부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전기기사(Electricians)는 2024~2034년 사이 9% 증가해 연평균 8만1000명의 채용 수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같은 기간 배관공·배관기술자는 4% 증가로 연평균 4만4000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하다. 평균 연봉은 전기기사가 6만2350달러(약 9100만원), 배관기술자 6만1550달러(약 8980만원)로 미국 중위소득을 넘는다. 기술직의 임금 프리미엄이 재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다.
청년들이 기술직에 눈을 돌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높은 취업률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8월 20대 고용률은 60.5%로 1년 전보다 1.2%p 하락했다. 반면 폴리텍대 졸업생들의 지난해 기준 취업률은 79.8%로 집계됐다. 시설자동화와 반도체 등 인기 학과는 90%를 넘는다.
청년들의 기술직 선호 현상은 세계적 추세다. 미국에서도 직업전문대학의 신입생 등록이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비영리단체 국립학생정보연구센터(NSCRC)에 따르면, 2025년 봄학기 신입생은 87만1000명으로 2020년 대비 약 19.4% 증가했다. NSCRC는 직업전문대학에 신입생이 몰리는 배경으로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과 인프라 투자 확대를 지목했다. 특히 전기·배관·건설·설비유지보수 등 현장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전공이 인기라는 분석이다.
기술 전문직종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과거 블루칼라 기술직이 평가 절하되고 화이트칼라 사무직이 안정적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높은 연봉과 전문성에 따른 직업 안정성이 오히려 주목받는다는 것이다.
강혁 사무국장은 “현장 기술직은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대표 직종 중 하나”라며 “지금까지 기술인재 양성이 과학인재 양성에 비해 다소 외면받아 온 측면이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기술직이 산업현장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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