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인터뷰] 김홍신 작가가 본 ‘계엄, 탄핵, 대선과 대한민국 미래’
“현직 대통령의 과오로 다음 대통령이 만들어지는 세상은 여기서 끝내자”
“이 대통령, 국민 가운데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잊지 말아야”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구성 요건 일부 삭제하는 건 죄를 인정하는 것”
“배고픔 해결해도 배 아픔은 해결 못 해…기쁨 되찾아 기적 일굴 때”

요즘 인터넷 SNS에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이라는 숏폼 형태의 영상이 역주행한다. 김홍신 작가가 몇 년 전 방송에 나와 ‘겪어보면 안다’라는 산문을 낭독하는 장면을 일부 편집한 영상이다.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걸 /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걸/(중략)/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
지치고 권태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마음의 휴식과 위안, 각성을 주는 듯하다. 김홍신 작가는 1980년대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소설 〈인간시장〉을 저술했고, 1990~2000년대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문학과 정치를 아우르며 당대 서사(敍事)를 남긴 그는 최근까지 140권의 책을 펴냈다. 산문집 〈겪어보면 안다〉는 139번째 나온 책이다. 가장 최근 펴낸 〈수업이 끝나면 미래로 갈 거야〉는 손자뻘 같은 아이들에게 들려줄 동화책으로 엮였다.
작가는 세상과 함께 아파한다. 지난해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은 그에게 두 번의 충격을 안겼다. 먼저 계엄이 주는 트라우마다. 그는 1980년 전국비상계엄 상황에서 계엄사에 연행돼 문초를 당한 적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던 1980년 그날이 엄습했다. 또 그는 계엄에 이은 탄핵 국면에서 뜻하지 않은 재난과 마주한다. 작가의 계엄 반대와 탄핵을 주장한 언론보도가 있었음에도 자신이 쓰지도 않은 글이 자기 명의로 인터넷을 달궜던 것이다. 지난해 12월 민주당을 비판하고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취지의 ‘현자 김홍신의 외침’이라는 글이 삽시간에 퍼졌다. 당시 필리핀 민다나오 산악지대에서 봉사활동 중이던 그는 뒤늦게 명의도용 사태를 알았지만, 이미 세상은 모두 그의 작품으로만 알았다. 결국 본인 명의로 작성된 허위 글이 온라인에 떠돌고 있다며 고소장을 접수하고, 경찰에 허위사실 유포자 수사를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 결과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김 작가는 국민에 아로새겨진 계엄과 탄핵의 상처가 대선을 기점으로 치유 단계에 접어들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 절반의 심경도 헤아릴 줄 아는 지혜를 이재명 정부가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6월 9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월간중앙과 만난 김 작가는 “이제 우리나라도 행복한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됐다”면서 “그러자면 대통령과 권력의 핵심 인사들이 역사의 필주(筆誅, 허물이나 죄를 글로써 꾸짖음)를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개월은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지켜봤는지 궁금합니다.
“제게 계엄과 관련해서는 공포심만 있는 게 아니라 트라우마가 있거든요. 윤석열이라는 존재가 그냥 망친 게 아니에요. 우리 민주주의를 아주 망친 사람이에요. 끔찍한 일을 한 것이죠.”
많은 이들이 비현실적인 일이 현실화한 것에 당혹감을 느끼는 것 같았죠?
“계엄은 잘못된 반역행위입니다. 계엄을 할 사건이나 사고가 없었어요.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안도 헌법재판소에서 100% 인용되리라 장담했죠. (군대가) 국회를 막았잖아요. 계엄 해제 권한을 가진 국회를 말이죠. 게다가 국무회의 인준을 받아야하는데 국무회의는 제대로 한 적도 없었습니다. 보수주의자의 특징은 헌법에 충실한 것입니다. 보수적 헌법재판관들도 100% 인용할 수밖에요.”

“억울한 사람이 많으면 반드시 탈 생겨”
그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고 민주당을 비방하는 글이 작가 명의로 온라인에 퍼졌네요.
“12월 7일인가 8일에 법륜스님과 오래전에 계획했던 봉사활동을 갔더랬어요. 제가 갔던 필리핀 민다나오는 산림지대라 휴대폰이 먹통이에요. 계엄을 찬성하고 이재명과 민주당을 비판하는 장문의 글이 제 명의로 나온 걸 사흘 뒤에야 알게 됐어요. 그래서 연합뉴스 기자에게 연락해 이만저만하다고 했더니 그제야 허위사실이라는 게 언론에 퍼지게 됐어요. 제 인생에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습니다. 4년 전에는 박근혜를 칭송하는 글이 제 이름으로 돌아다녔어요. 가짜 글이거든요. 저는 광화문 박근혜 규탄 집회에 가족과 함께 참석한 사람인데 말이죠. 문재인 정부 시절엔 문재인, 이재명, 탁현민을 싸잡아 비판하는 글에 제 이름이 도용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그 글도 그랬고요. 얼마 전에는 이재명을 아주 극단적으로 까는 단문의 글도 제가 쓴 걸로 해서 유포됐어요.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해서 허위사실 유포자 수사를 경찰에 의뢰하고 고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왜 ‘김홍신’을 사칭하는 글들이 유독 기승일까요?
“제가 세속적 이름이 알려진 편인 데다 방송 활동도 많이 했잖아요. 또 사회 비판적 발언도 자주 하고, 공직(15, 16대 국회의원)에 몸담은 적도 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김홍신 하면 야당 기질에다 언행이나 글은 좌파 쪽이라 제 이름을 그렇게 도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저만 그렇게 당한 건 아니더군요. 예전에는 김지하 시인, 조정래 작가가 그랬고, 이번 탄핵 국면에서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님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해요.”
세상은 그렇게 오해하기 십상이지요?
“주변에서는 실제로 제가 그런 글을 쓴 줄로만 알아요. 수백 명이 활동하는 단톡방에서 몇몇 분들이 그 글을 제가 쓴 걸로 알고 칭찬하길래 ‘그 글은 제가 쓴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어요. 그래도 믿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결국 제 명의를 도용한 이를 처벌해달라는 요지의 고소장을 단톡에 올리기도 했어요. 제가 쓴 글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는데 그걸 또 섭섭해하는 분도 있었어요. 연세가 지긋한 분 중에는 제가 그래 주길 바랐는데 그게 아니라는 게 밝혀지니 아주 솔직하게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고, 전화로 역정을 내는 분도 있었어요. 제 주변의 나이 드신 많은 분에게서 제가 비판받는 느낌이랄까. 제가 입장을 밝히는 것 자체가 (계엄과 관련해) 반대하는 것처럼 인식되면서 ‘왜 그러느냐’는 식으로 물어요. 하지만 제 행위가 아닌 걸 아니라고 얘기하는 건 인간 권리의 기본이자 당연한 자유 아닌가요.”
가짜뉴스의 폐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 김문수 전 대선 후보 등 정치 지도자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다 가짜뉴스에 당하고 있어요.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은 결론에 가서 문제가 생겨요. 가짜뉴스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사회가 법으로 다 구제하진 못해요. 억울한 사람이 많이 배출되는 세상에는 꼭 탈이 생깁니다.”
명의 도용과 같은 일을 겪고 나면 정신적·심리적 후유증이 있을 것 같아요.
“바른말을 하면 그걸 물고 공격을 하는데, 공격의 도(度)가 지나쳐요. 그러면 에라, 하고 참고 마는 경우가 생기겠죠. 마음으로는 ‘이런 걸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여기는데도 그게 안 되는 것이죠. 그럼 아파요.”

나라 멸망하는 다섯 가지 조건
사람이 미워질 땐 어떻게 하나요?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는 글귀를 거실에 아예 써 붙여놨죠. 바람은 그물에 안 걸려요. 근데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 걸려든다는 얘기죠. 인간은 누구나 미운 사람, 싫은 사람이 있어요. 그걸 미워하고 싫어하면 내가 그 사람의 노예로 사는 것밖에 안 됩니다. 1980년 전국비상계엄 당시 저를 계엄사로 연행했던 분이 있어요. 제가 쓴 〈도둑놈과 도둑님〉이라는 콩트 집을 국가원수 모독, 체제 비방, 군 모독이라고 문제 삼더군요. 당시 이종찬 국가보위입법회의 위원(현 광복회장), 김행자 국가보위입법회의 위원(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교수), 임인규 동아출판공사 회장 등 여러분이 탄원서를 넣어 풀려날 수 있었어요. 훗날 저를 잡아갔던 그분이 총선에 출마하길래 한 일간지 촉탁 기자로 있던 저는 그분을 기사로 신랄하게 비판했고, 상대 후보는 그 기사를 복사해 가가호호 뿌렸어요. 그분은 결국 낙선하고 말았죠. 나중에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차마 상가에는 못 갔지만, 집에서 영안실을 향해 절을 올렸어요. 나는 이미 당신을 용서했으니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말이죠.”
작가라는 직업은 권위주의 정부와 불화하게 마련이겠죠?
“예. 1980년대에는 흔한 일이었죠.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인 〈인간시장〉도 신문에 연재했는데 늘 검열단의 첨삭, 손질을 피할 수 없었어요. 가족을 향한 익명의 협박과 공갈도 있었죠. 일간스포츠에 소설 〈바람 바람 바람〉을 연재하게 됐어요. 업주의 횡포에 맞서는 여성 노동자들을 소재로 한 글인데, 정권의 압력으로 인해 연재 전날 밤에 원고를 다시 작성한 경우도 있었어요. 계엄이라고 하면 그저 공포심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트라우마가 떠올라요. 계엄 시절이 아닌데도 박근혜 정부 때는 블랙리스트에 올랐지요. 윤석열 정부의 계엄은 민주주의의 치욕입니다.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12·3 계엄 반대 서명을 했는데, 제가 연장자이기도 하고 가나다순으로 가다 보니 제가 대표 인물처럼 된 적도 있어요. 그리고 윤석열 퇴진 문인 서명에도 적극 참여하게 됐죠.”
대한민국은 위태위태하면서도 꿋꿋하게 굴러가는 것 같아요.
“나라가 멸망할 때 다섯 가지 조건이 있어요. 첫째가 내분으로 나라가 어지럽죠. 나라가 양 극단으로 갈리고 갈등 구조에 휩싸이는 거죠. 둘째는 최고 지도자가 혼암(昏闇)해요. 어리석고 모자라는데 고집은 센 경우를 혼암이라고 합니다. 셋째가 지도층의 호사입니다. 국회의원이 지금 누리는 온갖 특권이 호사스러운 것이죠. 넷째가 민심이반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인심이 떠나고, 민심이 갈라지고 있어요. 다섯째가 외침(外侵)입니다. 옛날에는 창검(槍劍) 궁시(弓矢)로 침입했지만, 요즘은 경제, 외교, 과학 기술로 침입하죠. 그다음에는 민족정기가 침략당합니다. 발해 역사소설을 집필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나라든 거의 이렇게 멸망하더군요. 고구려, 백제, 발해, 고려, 조선이 그랬어요.”
“법의 엄중함 정부가 보여줘야”
지금은 어떻게 보이나요?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지금 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압니까? 국민이 대단해서입니다. 위기를 겪고 나면 한 발짝 업그레이드되는 민족이니까요. 절대 빈곤 국가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다는 게 상상이 됩니까? 기적이지요. 이번 계엄도 누가 막았나 요? 국민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민족이며 정기(精氣)인가요? 이는 세계사에 없는 일입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이런 기적과 업적에도 지금 우리에게는 없는 게 있어요. 바로 기쁨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렸어요. 배고픔은 해결했는데 배 아픔은 해결을 못 하고 있어요. 시기와 질투, 이런 것들 때문에 가짜 뉴스는 더 늘어나고 있는 겁니다. 지금부터 기쁨을 되찾고, 기존의 기적에 더해 더 큰 기적을 일구는 노력을 해야 할 때입니다. 배 아픔을 버리고 주변을 품앗이하듯 끌어안는 정신으로 거듭날 때 진정한 문명국가로 우뚝 선다고 봅니다.”
법을 어기고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 법을 어겨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판결을 받은 대통령이 나라를 번갈아 통치하는 국면입니다. 이런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법의 공정함이라는 걸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일이 시작되고 있어요. 국민이 법과 제도를 자기 취향, 신념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이건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공명정대함을 안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불복 심리가 만연하게 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도 저런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는 심리적 불복 현상 말이죠. 아주 위험한 거예요. 정당한 법에 불복하기 시작하면, 결국 저항하는 방법은 폭력적 행위로 표출됩니다. 남을 해코지하고, 무기를 들며, 가짜 뉴스를 마구 퍼뜨릴 겁니다. 그래서 법이 엄중하다는 걸 이 정부도 보여줘야 합니다.”
정권이 명멸하는 과정과 불가분이죠?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들었어요. 2017년 탄핵 때문이죠. 이재명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만들었어요. 현직 대통령의 과오로 다음 대통령이 만들어지는 세상은 여기서 끝나야 합니다. 이는 민주주의 과정이 아니죠. 우리 사회가 과감하게 반성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잘못에 아주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에요.”
민주당은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공직선거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판결을 받은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구성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거나 대통령의 형사 재판을 임기 중에 중단케 하는 법안들입니다.
“이 문제는 역사 인식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역사에 필주(筆誅)라는 게 있어요. 지은 잘못과 죄과에 관해서 엄중하게 글로써 야단치는 걸 말합니다. 대통령과 권력의 핵심 인사들은 역사의 필주를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합니다. 역사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거든요. 대통령 재판 중지와 관련된 형사소송법을 굳이 개정하려고 해선 안 됩니다. 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법원이 재판을 연기할 수밖에 없잖아요(이날 오전 서울고등법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파기 환송심 재판을 연기했다). 법원이 연기하는데도 불구하고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만든다면 결국엔 필주를 당하게 되죠. 공정성을 위반하는 행위니까요. 지도자는 이런 역사 인식을 반드시 갖춰야 합니다. 이번에 대통령이 바뀐 건 시대가 요구하는 당연한 윤리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그렇게 만들었죠. 이게 만약 뒤집어졌다면 그것 역시 역사적 필주를 당하게 되는 겁니다. 이제 앞으로가 문제죠.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대로 약속을 지켜줘야 합니다. 취임사대로 안 하면 반드시 또 역사가 필주합니다.”

“이 대통령 주변 벌써 충성 경쟁”
김 작가는 대선 전에 이미 이재명 후보의 당선은 예정된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런 마당에 굳이 공직선거법에서 행위 관련 조항을 없애겠다는 민주당의 행보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작가는 “그건 자기 약점을 노출하는 것과 같다”면 서 “왜냐면 (법 개정 시도 자체가) 죄를 인정하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했다. 관련 조항에서 일부 구성요건을 없앤다는 건 그 죄를 인정한다는 것밖에 안 된다는 믿음이 확고해 보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아마 이재명 후보가 지시한 게 아닐 겁니다. 그렇게 어리석을 리 없지요. 주변의 충성 경쟁 결과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거듭 말하지만 이런 건 훗날 필주당할 사안이 될 수 있습니다. 정치를 이런 식으로 하면 나중에 덤터기를 쓸 거예요.”
이재명 정부에 주어진 우선적인 책무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취임사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경제 문제 해결입니다. 관련 태스크포스를 만든다고 했는데 참 잘한 일이죠. 둘째는 새 정부 인선(人選)을 잘 해야죠. 내 편만 데리고 정치를 하면 안 됩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고르는 게 지도력이잖아요. 그리고 나를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사람을 선택한 사람의 숫자를 생각해 봐야 해요. 김문수, 이준석 후보 표를 합친 게 이 대통령 표보다 많잖아요. 시대 상황으로 보면 이 대통령이 50% 넘게 득표했어야 하고, 그래야 개혁하기도 좋았어요. 그런데 49%대에 그쳤죠. 국민 중에서 (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이죠. 싫어하는 정도가 작아야 해요.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싫어하는 정도가 컸다는 데 양쪽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득표율 49%대 41%의 뜻을 그렇게 보시는군요?
“제 생각에 이번 대선 투표는 유권자들이 망설임 없이 그냥 확 투표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말하자면 ‘윤석열 싫다’, ‘이재명 싫다’로 각각 가버린 것이지요. 이재명 대(對) 김문수 선거 같은 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는 우리 시대가 참고해야 할 문제입니다. 여기에 국민의 메시지가 녹아 있어요. 이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기고 정치를 해줬으면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행복한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됐어요. 21대 대통령이 나올 때까지 누가 행복하게 임기를 끝냈는지 기억이 없네요.”
권력은 행사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말도 있지요. 내려놓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뜻이겠죠?
“예로부터 힘 있는 자는 힘을 쓰고 싶어 하는 게 인간 심리예요. 근데 힘이 있을 때 절제하는 건 지도자의 굉장히 큰 덕목입니다. 아름다운 덕목이지요. 정치인은 일단 타국과 경쟁할 때엔 국민 이익이 되는 쪽으로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합니다. 반면 개인의 이익은 연연해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가 평소 정치인 특권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게 그 얘기입니다. 정치인이 개인 이익을 챙기기 시작하면 국민이 따르지 않고 하늘이 노해요.”

“절대권력은 혼암(昏闇)에 빠지기 쉬워”
대선 국면에서 개헌이 큰 이슈로 등장했습니다.
“대통령 권한을 어느 정도 분산하고, 지방정부에도 많은 것을 내려보내줘야 합니다. 개헌을 제대로 해서 제7공화국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와 권한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주어졌습니다. 모든 공약을 100% 지킬 수는 없어요. 그러나 꼭 지켜야 할 것 중 하나는 개헌입니다. 절대권력을 가지면 혼암해지기 쉬워요. 대통령 본인이 겸손하고 낮아져야 해요.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바로 국민입니다. 조선 시대 궁궐에서는 꽃 한 송이도 백성이라 여겨 함부로 꺾지 않았던 전통이 있었어요. 그런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현명한 지도자는 백성을 주인으로 섬겨요.”
총선, 대선이라는 법적 절차에 의해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됐습니다. 이 또한 국민의 선택 아닌가요?
“어렵지만 권력을 풀어놔줘야 합니다. 힘이 있을 때 놓아 주지, 힘이 없을 때는 풀어놓지도 못해요. 그게 지혜이자, 선비정신입니다. 저는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한 방도로 선비주의, 선비정신을 주장해 왔어요. 큰 선비들은 청렴했고, 백성에게 다가갔습니다. 이 대통령은 두뇌가 좋아 굉장한 장점과 약점 두 가지를 함께 가집니다. 이제 약점을 버리고 강점을 살리는 강단을 발휘해 주었으면 합니다.”
“국민의힘, 대개혁 없으면 집권 불가능할 수도”
야당으로 전락한 국민의힘에 고언을 준다면?
“국민의힘은 대오각성해야 합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당이 해체되는 선까지 갈 수도 있어요.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에 표를 준 것도 좋아서 준 게 아니에요. 말하자면 누군가 싫어서 준 표란 말이에요. 그걸 인식해야 돼요. 지지를 얻자면 국민이 좋아할 정당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반사이익에 급급하지요. 계엄만 해도 그래요. 국민의힘이 달려들어 악착같이 반대 투쟁을 완벽하게 했다면 이번 대선에 이길 가능성도 있었어요. 계엄이 얼마나 바보짓인가 하는 건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아요. 국민의힘은 계엄을 끝까지 반대하지 못한 죄를 지금 필주당한 것입니다.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심각한 필주를 당할 겁니다.”
야당에 그런 경각심, 결기가 느껴지나요?
“지금 국민의힘 의원들은 다음 총선에서 당선될 생각만 가득 찬 것 같아요. 부산·경남(PK)에서 이재명 후보 표가 40% 나올 줄 누가 알았나요. 대구·경북(TK)도 바뀔 염려가 있어요. 미운 거로 따지면 폭삭 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새로운 정당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건 우리 미래사를 위해 좋은 방식이 아니에요. 국민의힘 스스로 대개혁을 해야 합니다. 김상욱 의원 같은 사람을 왜 못 끌어안은건가요. 바른말 하는 사람 하나도 못 견디는 것이죠. 재창당 수준으로 완전히 바꿔줘야 합니다. 새로 뽑힐 원내대표는 절절한 사과문을 의정 단상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그걸 국회 속기록에 남겨야죠. 국민의힘 국회의원 전원은 국민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 옷을 벗겠다는 사퇴서를 써야 합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대통령감 하나를 못 길러내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오랫동안 집권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큰 풍파가 지나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제가 1947년생인데 등단이 좀 늦은 편이에요. 내년이 등단 50주년입니다. 충남 논산에 있는 김홍신문학관 개관 7주년이기도 해요. 9월쯤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할 생각입니다. 제가 한 가지 약속한 게 있는 데 죽을 때까지 150권의 책을 쓰는 것입니다. 그동안 소설, 수필, 시, 평론, 동화, 고전 평역 등 모두 140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앞으로 열 권 더 남았네요. 글은 잘 쓰여지나요?
“요즘은 글이 잘 안 돼요. 나이 들수록 책임감이 더해져서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으로 와 닿는 데다 속도도 잘 안 나는 거예요. 아직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다 보니 더 느려지죠. 그리고 초고를 작성하고 이를 다시 원고지에 옮기는 과정에 제법 품이 들어요.”
김 작가 서재 책상에 놓인 원고지로 눈길이 갔다. 8절지 크기의 원고에 깨알 같은 글자들이 조밀하다. 웬만한 시력이 아니면 읽어내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스몰 사이즈에 보는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김 작가는 “초고 앞뒤 내용을 보면서 진도를 살피다 보니 글씨를 작게 쓰게 된다”면서 “그래야 실수를 안 한다”고 말했다.
건강한 시력을 가지고 계시네요.
“저는 신문을 4개 보고 있어요. 활자를 접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활자 중독이 있는가 봅니다. 저는 중앙일보 창간(1965년) 독자입니다. 그때가 대학 입시 재수할 때인데, 구독 시 경품은 물론이고 따로 추첨해서 상품도 많이 줬거든요.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구독을 단 한 번도 쉬지 않았으니 충성 독자인 셈이지요(웃음).”

“인생에 정답은 없다, 명답만 있을 뿐”
수년 전 TV 방송에서 낭독한 김 작가의 산문집 〈겪어보면 안다〉 몇 구절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살아오면서 몸으로 절감한 인생의 키워드 10개를 〈겪어보면 안다〉에 녹였다. 그는 어려서 가정 형편이 갑자기 쪼들리면서 절대 가난을 체험했다고 한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잘 안 되던 시절 선명회(현 월드비전) 산하 ‘스킨 클리닉’이라는 회사에 취업한 게 사회 첫 출발이었다. 여기서 한센병 치료 권위자였던 유준 연세대 교수 손에 이끌려 2년 동안 한센병 환우들과 거의 살다시피 했다.
김 작가는 “어떤 친구들은 나를 멀리하기도 했다”면서 “그래도 행복했던 건 취업해서 월급이 나오고 내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돌이켰다. 김 작가는 “굶어보면 안다, 진짜 밥이 하늘이라는 걸”이라고 덧붙이며 〈겪어보면 안다〉를 엮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마지막 구절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은 역설적 해방감, 삶의 용기 같은 걸 불어넣는 듯해요.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으면 모두 다 자기 자신이라고 답해요. 그런데 이렇게 묻지 않으면 자 신이 주인인 줄을 모르고 살아요. 우주 역사상 달랑 하나밖에 없는 주인이 바로 나 자신입니다. 저는 집 안 화장실에 이렇게 써 붙여 놓아요. ‘인생 딱 한 번. 잘 놀다 가지 않으면 불법’이라고 말이죠. 귀하고 비 싸고 좋은 건 빨리 사용하고, 즐기고, 누려야 합니다. 그게 누구죠? 바로 자신이죠. 세상의 주인은 나 자신 이라는 표현이 그렇게 나온 겁니다.”
이를 자각한 계기가 있을 법한데요.
“코로나 팬데믹 당시 저는 응급실, 음압실, 일반병실을 전전한 적이 있어요. 그 짧은 감염 기간에 체중이 4㎏이나 줄었으니 말 다했죠. 음압실에서 만난 의사, 간호사는 마스크, 고글, 전신 보호복을 착용해 누가 누군지를 몰라요. 다만 확실한 건 제 목숨을 살려 주는 분들이니까 천사예요. 정말 제가 천사를 만나서 살아난 것이죠. 좀 나아져 일반 병실로 옮겨 혼자 거동할 즈음엔 그분들이 다시 평범한 의사, 간호사로 돌아오더군요. 이렇게 인간은 변덕스러운 존재예요. 그렇다고 이게 나쁜 건 아니죠. 누구나 다 변덕스러운 거죠. 그런 얘기를 이 책에서 하고 싶었어요.”
인생은 뭔가요?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에 대해서는 정답(正答)이 없어요. 명답(名答)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명답을 찾는 거예요. 사람마다 이 명답은 다 달라요.”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