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그렇듯 미성년자들에게는 성년의 단계가 온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배우로서 미성년을 연기하다 성년의 배역을 연기하는 단계가 있고, 실제 배우가 성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배우 이레는 두 가지 과정을 함께 통과했다. tvN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는 2006년생, 내년으로 딱 스물이 되는 이레가 처음으로 맡은 성인 배역이었다.
‘성인식’이라고 하면 배우라면 누구나 큰 문턱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이유로 무리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미지를 억지로 어른스럽게 바꾸고, 심지어는 노출을 감행하거나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어려움에 빠지는 상황도 있었다. 이레는 그런 편이 아니었다. 19살의 마지막 날이 평범하듯, 20살의 첫날도 평범하게 지내려고 했다.

“‘스무 살’이라는 사실이 제가 최근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거리인 것 같아요. 성인으로 가는 변환점을 꾸려가야 하는 숙제가 있죠. 주변에도 많이 말씀하시고요. 하지만 모두 제 몫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찾아주시는 분들, 저를 보시는 분들이 제 연기의 폭 안에서 보실 수 있게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캐릭터 자체로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이레의 첫 번째 성인 역할은 자연스럽다. ‘신사장 프로젝트’에서 그는 때로는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때로는 속정이 있는 신사장(한석규) 운영의 치킨집 알바생 이시온 역을 맡았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할머니와 여동생과 사는 아픔이 있지만 애써 이를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생활전선에서 자신을 단련했다. 그러다 원칙주의자 조필립(배현성)과 마주치면서 난데없는 사랑의 감정도 느낀다.

“캐릭터를 너무 어둡게 잡지 말자고 했어요. 살아가면서 겪는 그런 사건과 상처를 잘 딛고 일어선 상태를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마냥 평범한 느낌을 주지도 않다가 여러 사람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레는 미리 따놓은 운전면허를 통해 원동기 면허를 따고, 오토바이 질주 모습도 연습했다. 그리고 배현성과 함께 ‘썸’에서 로맨스를 오가는 두근거리는 연기도 해봤다. 하지만 배현성과 마찬가지로, 이레에게도 이번 작품 가장 큰 도전이자 수확은 ‘배우 한석규’와 한 앵글에 잡힐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오디션을 진행하고, 출연이 확정되고 한석규 선배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어요. 저로서는 너무 좋은 기회고 배우로서도 뵙고 싶은 대선배님이죠. 한 편으로는 ‘왜 지금일까’하는 생각도 했어요. 성인 연기가 처음이고 여유가 없어, ‘좀 더 노련한 배우가 되고 뵀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숙한 저의 모습이어서, 배울 게 많아 지금 시기에 뵙게 돼 좋았습니다.”
이레는 한석규가 출연했던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좋아했다. 예스럽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그의 ‘버킷 리스트’이기도 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배현성과 수줍지만 조금은 그런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특히 극 중간 전세사기를 조사하기 위해 신혼부부로 위장하는데, 지금까지 이레의 분위기와 다르게 화장부터 의상, 머리까지 ‘꾸밀 대로 꾸민’ 모습을 보여준다.

“시온이가 털털한 성격에 화장도 안 하고, 캐주얼만 입어요. 하지만 그 딱 한 번의 모습이 터닝포인트가 돼요. 그래서 잘 하려고 준비했고, 잘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감독님과 촬영감독님의 애정이 드러났던 장면이었습니다. 아직 로맨스 연기는 잘 몰라요. 그저 호감을 갖고 조금씩 마음을 연 연기를 한 것 같습니다.”
2013년 이준익 감독의 영화 ‘소원’에서 아동 성범죄 피해를 입은 소원 역을 맡아 어린 나이에도 큰 인상을 남겼다. 이후 ‘오빠 생각’ ‘증인’ ‘반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등의 영화와 ‘육룡이 나르샤’ ‘지옥’ ‘무인도의 디바’ 등 드라마에서 아역으로 입지를 쌓았다. 연기활동으로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초·중·고 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로 따고 또래보다 2년 먼저 대학입시를 치러 중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다.

“비인가 학교를 다니다 보니 대학교를 가기 위해 검정고시를 봤어요. 연기에는 또래가 필요할 것 같아서 대학교도 갔고요. ‘나이도 어린데 왜 일찍 온 거야’하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2학년 마치고 한 학기 촬영 때문에 휴학했다가 복학했어요. 또 가면극인 공연이 있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레의 스무 살은 이렇듯 남들보다는 조금 더 일찍 찾아왔다. 하지만 그가 이미 아역시절부터 보였던 넓은 그릇, 어떤 배역이든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아량은 나이가 조금 먹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이레는 조금은 평범해 보이는 스무 살의 시작을 통해 언젠가 또 한 번 모두를 감동시킬 연기를 향하는 그 날까지 조심스럽게 하지만 굳건하게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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