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인터넷신문]치매는 기억, 사고, 언어 등 인지 기능이 점진적으로 저하되는 질병이다. 중증 치매 환자들은 일상생활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익숙한 사람과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며, 감정 표현이나 사회적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를 '불가능'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가능성과 잠재력에 주목하는 새로운 돌봄 방식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네덜란드 위스프(Weesp)에 위치한 치매 마을, '호그벡(De Hogeweyk)'이다.
호그벡은 전통적인 요양원과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09년 문을 연 이 마을은 폐쇄적인 병원이 아닌, 실생활을 모방한 작은 공동체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상점, 식당, 극장, 정원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입주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생활 방식을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 주택에서 생활한다. 이곳은 치매 환자들이 자율적이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의료적 돌봄은 철저히 ‘무대 뒤(backstage)’에 숨겨지고, 일상은 자연스럽고 평범한 삶의 형태로 유지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화훼장식’을 포함한 감각 기반의 회상치료다. 호그벡은 꽃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을 통해 치매 환자들의 기억 회복과 정서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지는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실외 정원 활동(Dementia Garden)은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감각을 자극하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꽃과 식물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입주자들은 정기적으로 정원을 산책하고, 향기나 질감을 느끼며 잊고 있던 과거의 경험을 떠올린다. 일부 환자는 직접 물을 주거나 잡초를 뽑으며 가드닝에 참여한다. 이는 단순한 활동을 넘어서, 육체적 움직임과 심리적 안정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둘째, 실내 꽃꽂이 활동(Floral Art Therapy)은 소규모 그룹(4~6인)으로 진행되며, 전문 플로리스트와 요양보호사가 함께한다. 참여자들은 꽃을 선택하고 줄기를 다듬고, 꽃병에 배치하는 전 과정을 거치며 ‘나만의 작품’을 완성한다. 완성된 꽃꽂이는 각자의 방이나 공동 공간에 전시되어, 성취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과정은 손의 소근육을 자극해 인지 기능 유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셋째, 감각 자극 활용은 후각, 시각, 촉각 등을 통해 기억을 비언어적으로 자극한다. 예를 들어 장미의 향기는 젊은 시절 정원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해바라기는 농장에서의 여름 추억을, 카네이션은 자녀가 선물해준 어버이날을 기억하게 한다. 말을 잊어버린 이들도 꽃을 손에 들고 냄새를 맡으며 눈빛이 바뀌고, 미소를 지으며 감정을 표현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순한 원예 활동이 아니다. 이는 환경과 삶, 기억과 감정, 신체 활동과 사회적 관계가 통합된 하나의 ‘치유 문화’다. 호그벡에서 화훼장식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회상의 열쇠이며, 감정의 통로이며, 관계의 다리가 된다.
실제 참여자의 변화 사례는 이 프로그램의 효과를 잘 보여준다. 80세 여성 입주자는 장미 향기를 맡으며 “우리 집 정원이 생각나네요”라고 말했고, 이는 감정 표현과 회상 능력의 회복을 의미한다. 76세 남성 입주자는 “손이 기억하고 있어요. 젊을 때 늘 꽃을 손질했거든요”라고 말하며 활기를 되찾았다고 한다.
호그벡의 사례는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치매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감금이나 관리가 아니라, 자율성과 존엄성, 그리고 의미 있는 활동이다. 화훼장식은 그 작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국의 돌봄시설에서도 이러한 감각 기반 프로그램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기를 기대해 본다. 꽃 한 송이에서 피어나는 기억과 감정의 힘은, 여전히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 따뜻한 도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