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 매출의 15%를 세금처럼 내라’는 조치를 복수의 산업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자국 반도체 업계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안보 장사’라는 비난에 직면했음에도 오히려 ‘트럼프식 사업’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13일(현지 시간) 블룸버그TV에 출연해 “(중국 매출의 15% 징수는) 지금 봐서는 특이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산업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 베타테스트(시범 운영)를 시작했으니 왜 (이런 방식을) 확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산업이 대상이 될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기술 경쟁의 주요 분야로 첨단 반도체 외에 인공지능(AI) 모델과 양자컴퓨터, 바이오 기술 등을 지목한 바 있다. 군사·항공·우주 등 안보와 직결되는 산업 역시 같은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의 새 모델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의 AI 칩 ‘H20’의 중국 판매 수익 중 15%를 세금처럼 납부받기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미국 반도체 기업 AMD도 엔비디아와 유사한 합의를 트럼프 행정부와 맺었다. 이에 따라 양 사가 트럼프 행정부에 내야 하는 돈의 규모는 연간 최대 수십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베선트 장관의 발언대로 적용 범위가 확대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관세 이외에 또 다른 주요 세 수입원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베선트 장관은 인터뷰에서 “(기업으로부터 받은 수익을) 정부 부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할 것”이라며 “미국 납세자의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구상하는 징수 방식은 법적 근거는 물론 국가 윤리 차원에서도 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실제로 15% 중국 매출 징수는 당장 미국 내에서 강한 반발에 막혔다. 우선 국가 안보에 핵심인 산업에 ‘가격표’를 붙였다는 비판이 거세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게리 허프바우어 선임연구원은 “이런 식이면 국가 안보에 해당하는 모든 산업에 (일부 수익만 내면) 수출을 허용하는 이상한 결과가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민주당 소속의 라자 크리슈나무르티 의원은 “외국은 이제 미국을 ‘적절한 값을 치르면 국가 안보가 협상 대상인’ 나라로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기술 담당자였던 애런 바트닉은 “미국 연방정부가 (기업이) 국가 안보를 무력화하는 대가로 불법 리베이트를 받는 셈”이라고 날을 세웠다.
합법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수출통제개혁법(ECRA)은 미국 연방정부가 기업의 수출 허가 신청과 관련해 수수료를 받는 일을 금지한다. 수출 수익 분배를 기업에 요구하는 것의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15% 매출 징수는 위헌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미국 헌법상 연방정부가 수출품에 세금 또는 관세를 매기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미국기업연구소의 데릭 시저스 선임연구원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매출 징수는) 위헌적인 수출세”라고 강조했다. 미국 매체들은 ‘록히드마틴이 중국에 F-35 전투기를 팔도록 허용하는 셈’이라는 논평까지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