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와 우크라이나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8-17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가장 충격을 받은 나라는 핀란드였다. 1930∼1940년대 소련(현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큰 희생을 치른 끝에 겨우 독립을 지켜낸 기억 때문이다. 1985년 11월 태어나 당시 35세이던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오랜 평화 속에 익숙해지고 자라난 우리 세대는 2020년대에도 권력 정치와 전쟁이 유럽에서 엄연히 현실로 남아 있음을 새삼 깨달아야 했다”고 말했다. 마린이 러시아군에 의한 우크라이나 민간인 집단학살 의혹을 거론하며 “전쟁의 얼굴은 잔인하다”고 말할 때 그의 음성은 심하게 떨렸다.

핀란드는 꽤 오랫동안 이웃나라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제정 러시아가 스웨덴을 제치고 북유럽 최대 강국으로 떠오르며 18세기부터 사실상 러시아 제국에 편입됐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발발 이후 영국·프랑스와 손잡고 연합국 일원으로 참전한 러시아는 막강한 독일군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전쟁 도중인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며 제정은 무너지고 공산주의 국가 소련이 성립했다. 이 틈을 타 독립을 선언한 핀란드는 국제사회로부터 주권 국가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핀란드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1939년 나치 독일은 동유럽 폴란드를 침공하는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공산주의 소련의 스탈린 간에는 이미 북유럽 및 동유럽 분할에 관한 비밀 협정이 체결돼 있었다. 이에 따르면 핀란드는 소련 영향권에 포함됐다. 그해 11월 소련의 핀란드 침략으로 이른바 ‘겨울전쟁’이 시작됐다. 핀란드 시민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강대국 소련을 이길 수는 없었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났을 때 핀란드 국토의 약 10%가 소련에 넘어갔다. 이것이 약육강식의 국제 질서다.

전후 핀란드는 미국 등 자유 진영과 소련 등 공산 진영 사이에 중립국으로 남았다. 말이 ‘중립’이지 실은 소련 영향권의 일부나 다름 없었다. 소련에 땅을 빼앗긴 것으로도 모자라 그 눈치까지 봐야 했던 핀란드 국민의 심경은 오죽 참담했을까. 하지만 수십년 세월이 흘러 이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으로 서방의 완전한 일원이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러시아의 침략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국토의 상당 부분이 점령을 당한 우크라이나에 핀란드가 ‘롤모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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