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간병범죄’…간병인, 노인학대 가해자 ‘과반’ [박진영의 뉴스 속 뉴스]

2025-07-05

치매 노인 등 간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병 범죄는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내년 치매 환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면서 더 많은 노인이 범죄 사각지대에 내몰릴 가능성이 우려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범죄 예방을 위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5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노인 범죄 피해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3년 7월∼2024년 6월 학대를 경험한 65세 이상 노인은 15만2123명으로 추정된다. 연구원은 지난해 7∼9월 66세 이상 5521명을 상대로 해당 기간 범죄 피해 경험을 면접 방식으로 조사해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노인 인구 대비 범죄 피해율은 1.5%로, 노인 10만명당 15만2123건의 학대 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노인 학대의 주된 가해자로는 간병인이 지목됐다.

응답자 55.1%가 간병인이라고 답했다. 나머지는 가족 또는 친척이었다. 배우자가 17.3%를 차지했고, 이어 친척(11.6%), 아들(7.8%), 딸(5.6%), 형제(3.2%), 며느리(2.8%) 순이었다.

노인 학대가 발생한 장소는 피해자 집이 78.9%에 달했다. 학대 유형으로는 ‘창피를 주거나 모욕적 말을 하거나 비웃음’(76.4%·중복 응답), ‘욕하거나 고함을 지르는 등 심한 말’(60.7%) 등 언어적 학대가 주를 이뤘다. ‘아픈데 일부러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내버려둠’은 7.9%였다.

이에 대해 연구원은 “아프거나 거동이 불편한 경우, 간병인 도움을 받는 노인이 증가한 때문으로 추측된다”며 “혼자 살면서 간병인에게 도움을 받는 노인이 학대 범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따로 사는 자녀들이 노인을 방임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분석했다.

간병인의 학대는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올해 2월 경기 파주의 한 요양 병원에서 90대 노인이 중국 동포(조선족)인 간병인에게 폭행당하고 이틀 뒤 숨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간병인은 노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간병하던 가족이 살해하거나 살인미수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A(84)씨는 살인 혐의로 지난해 말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다. 그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내를 집에서 3년간 홀로 돌보다 2023년 살해했다. 그간 아내를 성실히 부양했고 고령으로 심신이 쇠약한 상태이며,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범행 직후 자살을 시도했던 점이 양형에 참작됐다.

간병 범죄의 또 다른 유형으로는 죽음을 결심한 피해자 요구에 따라 살해하는 ‘촉탁살인’도 있다. B(48)씨는 2022년 “너무 아파 죽고 싶다”, “죽여 달라”는 70대 노모의 촉탁을 받아 노모를 살해하려 한 혐의로 이듬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확정됐다. 그 역시 파킨슨병, 척추 협착증 등을 앓는 노모를 집에서 홀로 간병했다. 직장까지 관두고 노모를 집에서 헌신적으로 돌봤고, 우발적 범행으로 보이며,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 전력이 없는 점이 양형에 참작됐다.

이 같은 노인 대상 간병 범죄라는 비극을 막으려면 돌봄 시설 확충 등 간병 부담을 덜어 주는 ‘통합 돌봄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노인 범죄 피해 실태 조사 연구 책임자인 김지영 선임연구위원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노인 학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의 중간 단계, 좀 더 자유롭고 의료와 연결되는 노인 주택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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