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국제사회가 지구 온난화에 맞서 보다 과감한 기후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이미 마련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국제 공동 연구진은 최근 권위 있는 학술지 ‘네이처 휴먼 비헤이비어(Nature Human Behaviour)’에 발표한 논문에서, 전 세계 시민들이 글로벌 기후 정책과 국제 재분배 정책에 대해 광범위한 지지를 보내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이 연구는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PIK), 프랑스의 환경개발연구센터(CIRED), 옥스퍼드대학교 등 여러 기관의 연구진이 공동으로 수행했으며, 국제적 협력과 재정 분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이 중심적으로 다룬 정책은 ‘글로벌 기후 제도(Global Climate Scheme, GCS)’다. 이 제도는 전 세계에 탄소세 또는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해 그 수익을 전 세계 모든 성인에게 균등하게 환급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고소득국에서 저소득국으로 자원이 재분배되는 효과를 갖는다.
흥미로운 점은, 응답자들에게 이 제도가 자국에 실질적인 재정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까지 명확히 설명했음에도, 여전히 강한 지지를 보였다는 것이다.
설문 결과, 유럽 4개국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76%, 미국에서는 54%가 이 정책을 지지했다. 특히 일본, 독일, 한국 등에서는 응답자의 80~90% 이상이 기후 정책의 글로벌 실행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 응답자의 경우 기후정책과 글로벌 재분배에 대해 매우 높은 지지와 국제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또한 GCS에 대한 지지율은 선진국 중 최상위이며, 구체적인 글로벌 정책들(예: 부자세, 기후 피해 보상, 기후 정의)에 대해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보편적 가치 추구 및 국제적 연대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한 라이너스 마타우흐 PIK 소장은 “이번 연구는 순간적인 여론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층적인 가치관을 분석한 결과”라며 “정치인들이 기후 보호 정책을 추진할 때 대중의 반발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설문조사는 단순한 지지율 측정에 그치지 않았다. 연구진은 실제 정책 수용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을 차단하는 목록 실험, ▲응답 결과를 지도자에게 전달한다고 공지한 가상 청원 실험, ▲정책 옵션을 조합해 선택하게 하는 컨조인트 분석 등 정교한 실험 설계를 통해 지지의 진정성을 검증했다.
그 결과,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해도 지지율은 일관되게 높게 유지됐고, 일부 국가에선 GCS를 지지하는 정치인이 오히려 득표율이 올라가는 효과도 확인됐다.
또한 이 연구는 국제 사회의 기후 재정 논의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현재까지는 선진국 중심의 ‘기후 클럽’이나, 일부 국가 간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파트너십’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보다 더 야심찬 글로벌 탄소 가격제와 재분배 모델이 대중적 기반 위에서 추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논문의 주저자인 프랑스 CIRED의 아드리앵 파브르(Adrien Fabre)는 “대중은 이미 국제적 기후 정의를 위해 비용을 분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평가하며, “그런데도 국제사회가 왜 더 빠르게 진전하지 못하고 있는지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공공 담론에서 형성된 오해나, 이익집단의 영향력과 무엇이 정치적으로 ‘현실적’인가에 대한 인식이 문제일 수 있다 이 연구가 그 경계를 다시 재설정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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