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지도화무십일홍(只道花無十日紅), 차화무일무춘풍(此花無日無春風)~.’ 풀이하면 ‘그저 붉은 꽃이 피어야 열흘을 넘기지 못하지만, 이 꽃만은 날도 없고 봄바람도 필요 없네’라는 뜻이다.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양만리(楊萬里)가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양만리는 월계화(月季花)란 붉은 꽃을 감상하면서 이 시를 썼다고 한다. 한데 월계화는 야생장미의 일종이며, 일년 사시사철 꽃이 핀다. 위의 시구는 이 같은 월계화의 특색을 노래했다. 해서 시의 제목이 ‘납전월계(臘前月季)’, 즉 ‘동지섣달 월계화 앞에서’이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직역하면 ‘열흘 동안 붉은 꽃이 없다’라고 해석된다. ‘한 번 성한 것은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청춘은 금방 지나가버린다’는 의미로, 세월의 야속함을 일컫기도 한다.
이후 이 성어는 ‘권력은 한때에 불과해 아무리 높은 권세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으로써, 그 의미가 확장된다. 권불십년(權不十年ㆍ막강한 권력이라도 십년을 넘기지 못한다)과 함께 권력의 일시성을 강조하거나 무상함을 표현할 때 세간에 자주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화무십일홍엔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영원할 것 같은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형체도 언제가는 사라지는 게 우주의 법칙이다. 권력도 그렇다. 권력은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 재상이었던 채택(蔡澤)은 월만즉휴(月滿則虧)란 만고(萬古)의 명언을 남겼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뜻으로, 화무십일홍과 같은 맥락으로 사용된다. ‘권력의 정점에 다다를 때 물러날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씨가 최근 전격 구속됐다. 역대 영부인 중 처음이다.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16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 부부가 동시에 구치소에 수감된 것은 헌정 사상 최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오명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화무십일홍이다. 유한한 권력을 위임받은 위정자들이 늘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메시지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불멸의 트롯가요 ‘노래가락 차차차’ 가사가 입안에서 절로 흥얼거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