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토큰화시장은 건물·토지 등 부동산 자산의 소유권이나 수익권을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토큰으로 쪼개 발행·거래하는 시장을 말한다. 과거엔 부동산 투자하면 기관투자자나 고액 자산가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젠 토큰화와 디지털 플랫폼 거래로 소액 투자자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 말하자면 부동산 시장 문턱이 대폭 낮아졌단 얘기다.
이러한 부동산 토큰화시장이 최근 RWA(실물자산) 토큰화시장의 대표 주자의 하나로 급성장세다. 2025년 5월 글로벌 기준 시장 규모는 35억 달러(4.9조 원)로 시장 규모는 채권 토큰화시장(152억 달러)의 4분의 1이지만, 지난 5년간(2020~2025년) 성장률은 연평균 145%로 채권 토큰화시장(60%)의 거의 2.5배다. 발행 형태도 단순한 지분 분할뿐 아니라, 개발이익이나 임대수익 등 수익권, 리츠(REITs)나 주택 모기지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다양화되는 추세다.
부동산 토큰화시장이 빠르게 활성화되고 있는 이유는 뭔가. 전문가들은 법·제도 환경의 정비를 첫째 요인으로 꼽는다. 미국, 싱가포르 등 주요국의 경우 자본시장법 체계 안에 부동산 토큰 발행 근거, KYC(고객확인제도), AML(자금세탁방지) 등 규정을 명확히 함으로써, 투자자 특히 기관투자자·기업 등 대형 투자가의 참여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블록체인 기술의 고도화 효과다. 부동산 매매, 임대료 지급 등을 코드로 자동화해서 중개 비용과 처리 시간 단축은 물론 안전성을 높였고, 폴리곤(Polygon), 아비트럼(Arbitrum) 같은 Layer 2 솔루션으로 확장성과 속도를 개선했다. 한마디로 블록체인 기술 혁신을 통해 부동산 거래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제고했다는 분석이다. 이외에 토큰화로 소액 및 즉시 투자가 가능해서 시장 수요를 늘린 점, 블랙록(BlackRock), 피델리티(Fidelity)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RWA 토큰화 투자 증가도 부동산 토큰화시장의 활성화 요인이다. 예컨대 2024년 3월 블랙록이 출시한 토큰화 머니마켓펀드 비들(BUIDL)은 그대로 부동산 토큰화에도 활용 가능하다는 평가다.
어디가 활발한가. 토큰화시장 규모와 기업 수, 프로젝트의 다양성 측면에서 미국이 단연 선두다. 시장 규모는 18억 달러로 세계 시장 전체의 약 절반, 기업 수도 20개 내외로 전체의 38%, 2020년대 초반부터 상업용 빌딩, 주거용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모기지 채권까지 토큰화 대상이 폭넓게 확대됐다.
유럽에선 법체계와 인프라 측면에서 앞서 있는 독일과 스위스가 1, 2위다. 독일은 2021년 6월 전자증권법, 스위스는 그보다 앞선 2021년 2월 DLT법에 의해 부동산 지분권과 수익권의 토큰화를 법제화했고, 독일의 도이치뱅크, Commerzbank, 스위스의 Sygnum, SEBA Bank 같은 디지털자산 전문은행들이 부동산 토큰화 수탁(Custody) 등 안정적인 인프라 구축을 담보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독일 3억 달러, 스위스는 2억 달러 내외다. 아시아에선 규제에 친화적이고 해외 자본유입이 많은 싱가포르가 활발하다. 통화청(MAS)이 부동산을 포함한 증권형 토큰 발행(STO) 규정과 외국인 투자자도 참여할 수 있는 글로벌 부동산 토큰화시장을 조성했다. 시장 규모는 약 1억 달러로 추정된다.
발행 형태별로는 부동산 지분의 토큰화가 약 60~70%로 1위, 수익권의 토큰화가 20%로 2위, 리츠 및 모기지 토큰화가 3위(10~20%)라고 한다. 부동산 지분의 토큰화에는 디트로이트·클리블랜드 등 주거용 부동산을 소액 토큰화한 미국의 RealT, 유럽 상업용 건물 지분 토큰화로 유명한 독일의 Brickblock가 대표적 기업이다. 수익권 토큰화는 콜로라도 리조트의 임대수익을 토큰화한 미국의 Elevated Returns, 스위스의 상업용 건물 수익권을 토큰화한 스위스의 Blockimmo, 리츠 또는 모기지 토큰화에는 미국의 Figure Technologies, 브라질의 ReitBZ 등이 유명하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2022년 4월 금융당국이 조각투자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규제샌드박스의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해 부동산 조각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 규모는 누적 투자 기준 1.1~1.2천억 원, 카사, 루센트블록, 비브릭, 펀블 등이 대표적 기업이다. BCG, Deloitte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부동산 토큰화시장은 2025년 현재 35억 달러지만, 2030년엔 3~4조 달러로 무려 1천 배의 수직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번 22대 국회 회기만큼은 토큰증권 등 관련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킴은 물론, 수탁(Custody)·공시 체제의 도입, KRX·예탁결제원 등과 민간 플랫폼 간의 API·프로토콜의 표준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실물자산 평가의 온체인 공시 의무화 등 핵심 인프라 구축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