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지역의 다양한 문제들을 함께 풀어갈 ‘이웃’으로 주목
지자체 개입 최소화에 지역 정착 지원정책 여전히 미흡한 한계점도

[주간경향] 라오스에서 온 이주노동자 A(30)는 전남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 내에 있는 중소 조선소에서 일한다. 대불공단에 있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처럼 그 역시 6년 전 E-9(비전문취업) 비자를 받고 이곳에 취직했다. 한국인 청년들은 목포보다 아래에 있는 이곳 영암의 중소기업에, 그것도 일이 고된 조선업종에 취직하길 꺼린다.
영암은 청년들은 떠나고 고령인구는 많은 인구감소지역인데, 지역 경제와 공동체가 버티는 건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민 등 이주배경인구 덕분이다. 총 6만명 인구 중 이들 인구가 1만3000명(21.1%)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이주배경인구 비중이 가장 높다. 특히 대불공단이 있는 삼호읍에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해 산다.
E-9 비자를 받고 4년 이상 일한 이주노동자들은, 보다 장기체류가 가능한 E-7-4(숙련기능인력) 비자로 전환되기를 희망한다. 비자 전환을 위해서는 300점 만점 중 20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A는 한국어능력시험 2급(50점), 나이(60점), 2년간 연평균소득 2500만원 이상(50점), 인구감소지역인 영암에서 3년 이상 일했다는 점(20점) 등에 더해 앞으로 2년간 인구감소지역인 영암에서, 이후 1년간 전남도 내 인구감소지역에서 일하기로 하고 군수·도지사의 추천(30점)을 받아 200점을 넘겼다.
지난 10월 A는 E-7-4R 비자를 받았다. 비자 뒤에 ‘R’이 붙은 건 인구감소지역에 거주·취업한다는 지역 조건(Regional Type)이 있는 ‘지역특화형 비자’라는 뜻이다. A는 주간경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눌한 한국어로 “한국에 머물면서 돈을 더 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A는 월급을 받으면 라오스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다. 자녀는 아직 없다. A가 E-7-4R 비자로 전환되면서 아내를 국내에 초청할 수 있게 됐다. 아내는 영암 내에서 단순노무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 아내와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F-2(거주) 비자다. 국내에 장기 체류하며 영주권(F-5)을 얻기 바로 전 단계의 비자라서 많은 이주노동자가 원하는 ‘꿈의 비자’다. A와 같이 일하는 이주노동자 중에는 이 거주 비자를 받은 이들이 있다. 다만 이들 역시 뒤에 ‘R’이 붙은 F-2-R(지역특화 우수인재) 비자다. 2년간 영암 내에서, 이후 3년간은 전남도의 인구감소지역 내에서만 머문다면 거주 지역에서 직종에 제한 없이 취업이 가능하다.
영암의 사례처럼 자치단체장의 추천을 받아 이주노동자가 지역에서 장기 체류·거주할 수 있는 이민정책을 활용하는 지역이 늘고 있다. 국내에 이미 들어온 이주노동자를 인구소멸지역에 머물도록 하는 지역특화형 비자 외에도, 올해부터는 광역자치단체가 특정 기술이나 자격이 있는 외국의 노동자(E-7)나 유학생(D-2)을 추천하면 법무부가 쿼터 내에서 이들에 대한 비자발급 요건을 낮춰 입국토록 하는 ‘광역형 비자’ 시범사업도 시작됐다. 중앙정부의 이민정책에 ‘지자체장’과 ‘지역’이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주무 부처인 법무부는 이를 ‘지역 기반 이민정책’이라고 부른다.
사실 ‘중앙’이 아닌, ‘지역’을 이민정책 설계의 또 다른 주체로 보는 건 캐나다와 호주, 유럽 등에서는 보편화했다. 중앙 정부 차원의 이민정책이 실패했고, 이민정책은 주거·복지·교육·의료·일자리 등이 있는 지역 차원에서 함께 논의하고 설계해야 한다는 판단에, 이들 지역에서 이민정책을 설계할 때 지역과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관여한다. 독일이나 스위스 등에서는 이민자와 난민을 받을 때 지역 주민들이 모인 게마인데(한국의 읍·면 단위) 의회에서 이들을 위한 주택을 어떻게 마련할지, 이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어떤 방식으로 지역 사회와 통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인력을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는 스위스의 지식인 막스 프리슈(1911~1991)의 말처럼 이주노동자를 ‘인력’으로서가 아닌,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란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국내에서 지역 활동가들은 이주민들이 일자리 부족뿐만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이웃’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북 순창에서 주민자치회 활동을 하는 구준회씨(48)는 “이주민들의 자녀는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리고, 결혼 이주 여성들은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선주민·이주민 아이들을 돌보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 교육을 하는 등 지역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아직 이주민과 선주민 간에 교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앞으로 이주민들이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전히 ‘인력’ 중심의 이주정책...“영주권은 오를 수 없는 사다리”
다만 전문가들은 법무부의 ‘지역 기반 이민정책’이 지자체와 지역 공동체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지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 시행 지역의 외국인 정책에 대해 분석한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최선영 연구원은 지난해 ‘종합적 이민정책 수립을 위한 이민자 유입, 정착, 통합의 단계별 접근’ 논문에서 “(지역의) 정착지원 관련 정책이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라며 “이민자가 정주하고 싶고 정주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해서는 의료·보건, 주거를 포함한 사회 제반 정책 대상으로서 이민자를 인식하고 이들을 위한 지원 방안을 분야별 정책에 포함하는 노력 역시 동반돼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 중 적극적인 이주민 정책을 편다고 평가받는 영암도 사정은 비슷하다. 영암은 비수도권에서는 최초로 이주민지원팀을 신설하고, 외국인 주민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여 ‘외국인 주민 기본계획’도 수립했다. 외국인 주민지원센터도 운영한다. 다만,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영암의 이주노동자 등을 조사한 자료(‘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외국인 이주노동자 체류실태와 지역정착 방안 연구’)에 따르면, 영암의 이주노동자들은 의료서비스, 교통, 주거 등에서 상당한 불편을 겪는다고 응답했다.
법무부의 지역 기반 이민정책이 여전히 이주노동자를 ‘인력’으로만 보고 이들의 거주를 최소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영암의 이주노동자 A가 목표로 하는 F-2-R 비자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지만,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전년도 소득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2배 수준인 1억원 상당에 이르러야 한다. 신선미 지역이민정책개발연구소 대표는 “‘영주’로 가는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소득 요건 등에서 오를 수 없는 사다리가 존재한다”며 “이주노동자의 저임금 노동력만을 취하려고 할 게 아니라 이들의 임금을 높이고,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몽골 국적의 노동자 강태완씨가 지역특화형 비자로 전북 김제의 기업에 취직했다가 산재로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류형철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은 “특별법을 제정해 광역지자체에 이주정책에 대한 더 많은 권한과 예산을 주고, 지역이 주도적으로 이주민과 함께 살아갈 공간을 만들어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지역의 경쟁력은 ‘관계성’에서 나올 겁니다. 지역 공동체에서 관계성을 복원하고, 그 관계 속에서 이주민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지역이 경쟁력 있는 사회이고 살 만한 지역이겠지요.”
영암의 이주노동자 A는 그의 바람대로 한국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까. 지역 사회는, 한국사회는 언제쯤 그와 그의 가족을 ‘주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