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중 웃으며 떠난 사람 없어
대선때마다 후보들 공약 하고 이행 안해
제도 문제 결론...권력 분점형 개헌해야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구속됐다. 전직 대통령 부부의 구속은 헌정사상 최초다. 우리 헌정사에서 되풀이돼 온 역대 대통령 비극의 결정판이다.
우리 대통령의 끝은 좋지 않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망명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에 의해 시해되는 비극적 말로를 맞았다. 이런 대통령의 불행은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됐다.

3김 시대를 주도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식이 구속되는 불운을 겪었고, 보수 정권을 이끌었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족의 비리 의혹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재임 중 비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탄핵돼 부인과 함께 영어의 몸이 됐다.
임기를 마친 뒤 웃으면서 집으로 향한 사람은 없다. 국민의 지지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끝은 한결같이 좋지 못했다. 이쯤 되면 대통령의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로 보는 게 합당하다.
대통령의 불행은 오래전부터 예고됐다. 막강한 권력 주변에는 파리 떼가 꼬이기 마련이다.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주변의 비리를 막으려 백방으로 노력했다. 대통령실에 민정수석과 특별감찰관을 뒀지만 허사였다. 대통령 자신이 깨끗하면 자식 또는 가족, 아니면 측근이 비리에 연루됐다. 무소불위 권력의 속성이다.
대통령의 불행은 대선 전부터 잉태된다. 5년 단임의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니 대선전 자체가 '올 오어 낫씽(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이 된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한판승부다. 승자는 모든 것을 차지한다. 패자와 그 진영은 멘붕이 된다. 대선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정치인들의 싸움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죽고 살기 게임에 지지자들도 극단적 경향을 보인다. 지지 후보가 패하면 사실상 심리적 불복 상태에 빠진다.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 인식이 진실인 심각한 진영논리에 좌우된다. 당선자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반대편에 견고한 성을 쌓는다. 국정 운영에 무조건 반대하는 이 비율이 30%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출발부터 순탄치 않다.
한창 일해야 하는 2년 차에 지지율이 떨어지고 3년이 지나면 레임덕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다. 시간이 갈수록 권력 누수가 본격화해 말년엔 식물 대통령이 된다. 역대 대통령의 불행 공식이다.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한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 취임 후 1년까지는 측근이 쓴소리를 하면 고마워하다가 2년이 되면 충언에 고개를 돌리고 3년을 넘기면 화를 낸다."
처음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를 수용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임기 말에 측근들의 직언이 줄어드는 반면 아첨꾼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통령은 민심과 멀어지며 점점 고립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불행은 제왕적 5년 단임제 대통령제가 부른 비극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라는 결론이 이미 났다. 권력 분점형 개헌의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선 후보들은 선거 때마다 개헌을 약속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모두 대통령의 불행은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착각이었다.
지난 대선에서도 개헌이 뜨거운 이슈가 됐지만 불발됐다.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재명 대통령이 소극적이었던 탓이다. 이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로 일찌감치 독주 체제를 갖추면서 개헌론이 힘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개헌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개헌을 언급한 바 있다.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대통령 4년 연임제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할 생각이라면 차제에 권력 분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책임 총리제 등의 도입으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 국민 70% 안팎이 동의하고 있다.
더 이상 대통령의 불행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국민을 실망시킨 것으로 충분하다. 국민은 종지부를 찍기를 원한다. 이 대통령의 결단에 달렸다.
leej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