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폐점 매장이 36곳이라는데, 왜 장사가 잘 되는 우리 점포가 포함됐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점장도, 직원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그냥 길바닥에 버려졌습니다.”
“3개월째 정산이 지연됐고, 생존을 위해 자체 키오스크를 도입하자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습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고통입니다.”
“우리 딸이 여섯 살인데요, 오늘 아침에 이렇게 묻더군요. ‘아빠, 요즘 무슨 일 있어요?’…그 말에 눈물이 나더군요.”
지난 5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더불어민주당과 마트노조, 홈플러스 입점 상인들이 함께 모인 비공개 간담회 현장에서는 숨죽인 절규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점포 폐점으로 인해 실직을 앞둔 노동자들, 계약 해지에 직면한 점주들, 자신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이들의 목소리다. 그들은 “회생이 아니라 청산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회생은 법정관리의 수단일 뿐, 그 안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의 생존은 고려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이 이 사태의 본질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재명 정부의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가 주목받고 있다. 이 TF는 대통령 직속 조기대응 기구로, 민생·고용·산업위기 대응을 위한 핵심 장치다.
그리고 지금, 이 TF의 첫 번째 민생 의제로 홈플러스 사태가 정식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사전 논의를 거쳐 TF 안건 상정을 검토 중이며, 마트노조는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무더기 폐점이 현실화될 경우 실직자는 33만명, 사회경제적 손실은 최대 10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대주주 MBK파트너스의 결정에 따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표면적으로는 ‘경영 정상화’와 ‘폐점 최소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임대료 조정 실패를 이유로 전국 주요 매장 30여 곳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특히 장사가 잘되는 점포들까지 폐점 대상에 포함된 것은 단순한 효율화라기보다, 자산 청산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회생인가, 청산인가. 이 질문은 이제 단순히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정책의 방향을 묻는 문제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민생 회복이 우선”임을 강조하며 비상경제TF를 가동했다. 재정·고용·물가를 중심으로 한 거시경제 대응뿐 아니라, 현장 중심의 구조조정 감시와 조정 기능도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홈플러스 사태는 이 TF의 실질 대응능력, 나아가 대통령의 민생 기조가 선언에 그치지 않는지를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된다.
정치권 내에서는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에 대한 국회 청문회 요구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을지로위원회, 민주당 민생TF는 김 회장 책임론과 더불어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의 손실 가능성까지 문제 삼고 있다.
실제로 홈플러스에는 국민연금 9천억 원이 투자된 상태다. 회생이 실패할 경우, 고용 붕괴뿐 아니라 연기금 손실이라는 이중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홈플러스 측은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점포 중 일부와는 재합의 가능성이 있다”며 “임대료 조정에 최선을 다해 회생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 노동자들과 입점 상인들은 ‘정보 단절’, ‘불투명한 의사결정’, ‘일방적 구조조정’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회생이라는 절차의 기술적 성공 여부가 아니다. 정책이 진짜 민생을 위한 도구로 작동하느냐, 그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줄 수 있느냐는 더 본질적인 질문이 남아 있다. 이 질문에 이재명 정부는 누구보다 신속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통령이 강조했던 ‘약자의 편에 서는 정치’, ‘현장에서 출발하는 정책’이 공허한 말이 아니길 바란다. 지금이 그걸 증명할 때다. 홈플러스의 회생 방안은 점포 정리와 자산 매각 같은 단기 재무 기술이 아니라, 노동과 상권, 생계와 지역경제를 함께 살리는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영 전략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홈플러스 사태는 단지 유통업 구조조정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이재명 정부 민생정책의 출발선에서 마주한 가장 현실적인 시험대다. 더 이상 거대한 자본 앞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들의 생명선인 ‘일할 권리’를 지켜주는 지지선, 즉 삶의 기반을 끝까지 함께 붙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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