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잃어버린 것, 구글이 되찾은 것 [정혜진의 라스트컴퍼니]

2025-06-15

2년 전 6월의 어느 날, 골프 카트에 실린 채 둘레가 1마일(1.6km)에 달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애플파크를 감싼 길을 달리고 있었다. 5분 남짓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져 계속 숨을 골랐다. 옆자리에서 동행했던 유튜브 채널 ‘오목교 전자상가’의 크리에이터 ‘비트’님과 현재 어떤 감정인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생생하다. “떨리고 흥분된다”는 게 일치된 감정이었다. 마침내 극소수에게만 주어진 40분 간의 체험 시간. 애플 비전프로를 쓴 채 가보지 못했던 미국 오리건주의 후드산 전경이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처럼 펼쳐졌을 때 전율은 현실이 됐다. “이게 바로 미래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던 게 생생하다.

다시 애플의 심장을 뛰게 하자

1997년 8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Macworld Expo). 이 날은 애플에 복귀한 고(故) 스티브 잡스가 공식적으로 다시 애플의 수장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낸 복귀 석상이었다. 기조연설에서 숨 돌릴 틈 없이 애플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의 1억5000만 달러 투자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맥월드 엑스포는 당시 매킨토시 생태계 최대의 박람회로, 애플 팬들과 개발자가 교류하고 업계의 트렌드를 나누는 자리였다. 오늘 날의 애플 최대 개발자 행사 WWDC의 전신인 셈이다. 당시 발표한 기조 연설 내용들이 앞으로 그가 애플을 이끌어나갈 전략이었다면 사람들을 흥분감과 설렘으로 이끈 것은 이 대목이었다.

“다시 애플의 심장을 뛰게 합시다(Let the heartbeat again)”

이 시점부터 우리가 아는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다.

‘원 모어 띵’의 마법 사라지다

이때 잡스가 건 마법은 그의 생전 계속 이어져 기조연설에서 ‘한 가지 더(One more thing)’을 언급할 때마다 발표 내용에 앞서 전세계인의 심박수를 올리는 역할을 했다. 무언가 새롭게 범주를 정의하고 기존의 틀을 깨는 제품을 통해 생태계에 ‘즐거운 서프라이즈’를 선사하는 게 사람들이 기억하는 ‘애플다움(Appleness)’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마지막으로 경험한 것은 2023년 6월 열린 WWDC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원 모어 띵’이라는 말과 함께 공간 컴퓨터인 ‘비전 프로’를 공개했을 때였다.

지난 9~13일(현지 시간) 열린 ‘WWDC 25’에서 애플이 야심차게 선보인 새로운 디자인 표현 방식인 ‘리퀴드 글래스(Liquid Glass)’는 전 세계 테크 전문가들로부터 ‘차분한’ ‘절제된(Subdued)’ 발표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리처럼 흐르는 깊이감과 유동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내세웠지만 사용자 경험의 근본적인 지평을 넓히는 ‘한 방’이 없었다. 잡스는 생전에 시장 조사에 에너지를 쓰지 않는 이유를 두고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대신에 잡스 특유의 직관과 이를 완벽한 디테일로 구현하는 힘은 대중의 기대치를 ‘점진적’으로 높이는 게 아니라 이를 한참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가져다주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과연 쿡 CEO는 가슴에 손을 얹고 ‘리퀴드 글래스’가 이 같은 철학을 잇는 소비자가 기대하지 못하던 바로 그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발표 내내 현란한 프레젠테이션 사이에서 설렘보다 익숙함을 느껴가고 있을 때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글이 되찾은 ‘즐거운 서프라이즈’

한 달 앞서 진행된 구글의 개발자회의 ‘I/O 2025’와 비교하면 온도차는 더욱 극명하다. 이 자리는 구글이 준비한 AI 기술에 대한 즐거운 서프라이즈로 가득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구글은 이 자리에서 ‘AI 기술이 전 세계의 조직과 회사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새로운 프런티어(New Frontier)’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며 ‘제미나이(Gemini)’를 AI에이전트 생태계의 허브이자 표준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특정 기기나 서비스에 국한하지 않고 검색, 안드로이드, 클라우드, 하드웨어 등 이용자가 구글 생태계 내에서 경험하는 모든 지점에서 제미나이를 스무스하게 경험하게 하는 데 초점을 뒀다.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진정한 '협력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인간과 AI의 관계를 재정의하겠다는 구글의 야심 찬 선언에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한 때 구글을 지배했던 ‘악마가 되지 말자(Don’t be evil)’는 초기의 이상주의가 부활했다는 시각도 나왔다. 구글은 이상주의를 바탕으로 10배 이상의 혁신을 내놓는 데 집중하는 ‘구글다움’을 회복했다. AI라는 도구를 만나 구글은 단순히 검색과 광고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는 회사로 다시 포지셔닝했다.

챗GPT 이후 2년 6개월 간의 행보 차이

이는 오픈AI에서 챗GPT를 출시해 빅테크 전체의 생존을 위협했던 2022년 11월 이후 지난 2년 6개월 간 두 회사가 어떤 태도로 생존 모드에 나섰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구글이 AI를 제품 전체에 통합하려는 광범위한 노력을 기울인 반면, 애플은 기기 중심의 폐쇄적 생태계와 강력한 프라이버시 정책을 중시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접근해 큰 차이를 낳았다. 애플의 강력한 기기 중심 폐쇄적 생태계와 철저한 프라이버시 중시 정책은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각 기기 내부에서의 AI 기능 최적화에는 기여했지만 구글처럼 방대한 웹 데이터와 서비스 전반에 걸친 AI 통합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는 사용자 데이터를 폭넓게 활용하는 AI 개발에는 근본적인 제약으로 작용했으며 결과적으로 애플 인텔리전스(AI)가 선보인 기능들은 혁신적이라기보다는 '점진적 개선'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두 회사의 숙제

애플과 구글의 개발자회의는 기술을 공유하는 자리보다는 이들 회사의 비전을 확인하게 한 자리였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 애플이 '애플다움'을 잃어버린 채 최적화의 달인이 되어가는 동안, 구글은 새로운 시도를 했다. 애플이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기술적 우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애플다움’, 즉 애플만의 영혼에 가깝다. 애플의 제품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완벽하게 다듬어진 기능 뒤에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는 철학 속 숨겨진 집중력과 디테일이라는 영혼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구글이 되찾은 것 역시 비전이다. 단순히 더 나은 검색 엔진을 만드는 것을 넘어, 인간의 지적 능력을 확장하고 AI와 인간이 협력하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다. 이는 구글 창립 당시의 "세상의 모든 정보를 정리하여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만들자"는 비전을 다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정보 정리에서 지능 확장으로, 접근성에서 협력으로 확장된 이 비전은 구글이라는 기업의 존재 이유와 사명감을 다시금 세상에 각인시켰다.

잡스가 지금 돌아온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 아닐까.

“Let our hearts beat again”

애플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얇은 기기나 더 유려한 디자인 언어가 아니다. 픽셀 하나에 집착하던 광기, ‘미친 사람들’이 모여 작은 팀으로 거대한 꿈을 실행하던 반항적 창의성을 비롯해 이들을 모아 비전을 제시할 리더가 절실하다. ‘Think Different’ 철학 아래 새로운 범주를 정의하는 혁신가로서의 면모가 절실하다.

구글에게 주어진 과제는 큰 비전을 실행할 속도감을 늦추지 않고 일상의 놀라움으로 체험케 할 집요한 실행력과 AI 윤리를 최전선에서 지켜낼 일관된 원칙이 필요하다. 결국 승부는 속도나 연산력이 아니라 ‘가슴을 뛰게 하는 서사’를 얼마나 현실로 끌어오는가에 달려 있다. 기계가 점점 똑똑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깊은 울림을 찾는다. 과연 어느 곳이 내놓을 비전에 심장이 뛸 것인가, 두 거인이 맞닥뜨린 또 다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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