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현지시간) 체포된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11일 새벽 석방됐다.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에 위치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 이민당국에 체포돼 포크스턴 수용소에 억류된 지 7일만이다.
석방된 한국인 근로자는 317명(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중 1명은 자진 귀국 대신 잔류를 택했다. 근로자들은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외국 국적자 14명(중국 10명, 일본 3명, 인도네시아 1명)과 함께 전세기편으로 귀국길에 오른다.
나올 때는 ‘수갑’ 없었다…“한국 측 요청 수용”
이날 오전 1시 30분께부터 수용소를 나와 버스 탑승을 시작한 근로자들의 표정은 밝았다. 석방을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기도 했고, 현장 상황을 지휘해온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와 악수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다만 장갑차까지 동원됐던 체포 당시 입고 있던 작업복 차림이 많았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석방된 근로자들이 버스에 탑승하는 데는 40여분이 소요됐고, 버스는 곧장 전세기가 기다리고 있는 애틀랜타 공항으로 출발했다. 미 이민당국은 이들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버스 8대에 나눠 탈 때까지 수갑 등 별도의 신체 속박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근로자들이 또 다시 공개적으로 범죄자로 취급되는 참사를 피한 셈이다.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관계자는 “미 당국의 엄격한 호송 규정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가 강력히 요청한 대로 수갑 등의 신체적 속박 없이 구금 시설에서 공항으로 호송할 것을 지시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전날 ‘불발’ 원인은…“트럼프의 잔류 요청 때문”
이 관계자는 다만 전날 근로자들의 귀국이 돌연 불발된 직접적인 원인은 수갑 착용 여부에 대한 이견보다는 “트럼프의 잔류 요청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전날 근로자들의 귀국을 중단시킨 미국 측의 결정이 이뤄진 배경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구금된 한국 국민이 모두 숙련된 인력이니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서 계속 일하면서 미국의 인력을 교육·훈련 시키는 방안과, 아니면 귀국하는 방안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알기 위해 귀국 절차를 일단 중단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 조현 외교장관을 만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전했고, 조 장관은 “우리 국민이 대단히 놀라고 지친 상태여서 먼저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에 돌아와서) 일하는 게 좋겠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날 중단됐던 석방 및 귀국 절차는 하루만에 재개됐다.
“‘불법 체류’ 기록 등 재입국 불이익 없을 것”
조 장관은 이날 루비오 장관과 21분간 만난 데 이어 앤디 베이커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겸 부통령 안보보좌관과 따로 만나 합의 사안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조 장관은 “특히 이분(근로자)들이 다시 미국에 와서 일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 하겠다는 것도 확약받았다”며 “이번 사태로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향후 미 입국 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근로자들이 돌아가지 않고 계속 (미국에 남아) 일하게 해준다고 한 건 불이익이 없게 해준다는 것과 같다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입국 시 (불법체류) 기록으로 (입국)허용 여부를 결정한다”며 “기록에 남으면 불이익 조치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그게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진출국한 근로자들의 ‘불법체류’ 기록도 남지 않도록 협조를 구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논란의 여지 남아…“‘비자 목적 위배’ 동의 못해”
다만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는 정부의 입장과 달리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불법체류 사실을 인정했는지에 대해 “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 “근로자의 상당수가 B1(단기 방문비자)과 ESTA(전자여행허가제)가 많았다”면서도 “기본적으로 이분들이 비자 목적에 위배되는 활동을 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이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나 유감 표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묻자 “그런 건 없었다”며 “미국은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입장”이라고 했다. 미 이민당국은 이를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 전까지 근로자들에게 수갑을 채울지 여부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현재 지닌 비자가 유효하다면 불이익이 없다는 건 확인됐다”면서도 “ESTA(전자여행허가제) 등 구체적 비자 사례에 대해서는 추가 협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관련 협의의 대상은 루비오 국무장관이라고 했다.
이창환 이민 전문 변호사는 “근로자들이 향후 새 비자를 만들기 위해선 주한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이번 일 때문에 ESTA나 B1 비자의 신규 발급에 제약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또 입국 심사를 담당하는 곳은 국무부가 아닌 별도의 세관국경보호국(CBP)이기 때문에 국무부와는 다른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기 10억원 LG엔솔 부담…“자력구제 우선 원칙”
근로자들은 수용 시설에서 430㎞ 떨어진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전세기편으로 귀국길에 오른다. 투입된 전세기는 대한항공의 보잉 747-8i 기종으로 368석 이상의 좌석을 갖춘 장거리 국제선에 최적화된 기종이다. 약 15시간 30분의 비행을 거쳐 한국 시간 12일 오후 2시께 인천공항에 도착할 것으로 전망된다.

10억원 가량으로 추정되는 전세기 비용은 LG에너지솔루션이, 근로자들을 수용시설에서 공항까지 이동하는데 사용된 버스 운용 비용은 현대엔지니어링이 부담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자력구제 우선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근로자를 현장에 파견한 기업이 비용을 부담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