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국 전 민주노동당 대통령 선거 후보에게 6·3 대선일 하룻밤새 약 13억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후원자 대부분이 2030 세대 여성으로 나타나면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5일 민주노동당에 따르면 선거 당일인 3일 오후 8시 출구조사 발표 이후부터 다음날 오전 10시쯤까지 민주노동당엔 약 3만6100건, 13억4400만원가량의 후원금이 모였다. 지난 5월부터 한 달가량 선거 준비 기간에 모인 모금액은 약 9억원인데, 이보다 약 1.5배 많은 금액이 14시간 만에 모인 셈이다.
후원자 중에선 2030세대 여성의 비중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후원금 영수증을 받기 위해 인적 정보를 남긴 1만2000여명 중 2030세대가 70~80%를 차지하고, 그들의 70~80%가 여성이었다”고 전했다. 한 건당 평균 4만원이 안 되는 소액 후원금 위주였다고 한다.
권 전 후보의 득표율이 선거비용 보전 기준인 10%에 미치지 못한 만큼 후보의 금전적 부담을 우려한 일부 유권자들이 지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권영국 후보의 대선 공약 2번이 “성평등을 모든 정책의 기조로 삼겠다” “성소수자 정책을 갈아 엎겠다” 등 인권 공약이었다. 제21대 대선에서 권 전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0.98%로, 1%에 못 미쳤다. 현행법상 유효 투표수의 15% 이상을 득표하면 선거비용의 전액을, 10~15% 득표 시엔 절반을 보전받을 수 있다.
제20대 대선 심상정엔 12억원…“안 찍어서 미안”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 당시 초박빙 선거 구도 속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에 표를 던졌던 일부 2030 여성 유권자들은 심상정 당시 정의당 후보에 후원금을 보냈다. 약 12억원이 모금됐다.
이번 대선에서도 김문수 전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에게 표를 준 유권자 중 일부가 권 전 후보에게 후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일 엑스(X)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권영국에게 가야 하는 표가 이재명에게 많이 갔음을 기억해 달라”, “20대 남성은 이준석에게 40% 가까이 표를 줬고, 20대 여성은 5% 이상 권영국에게 표를 줬다”라는 등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권 전 후보에게 후원금을 보냈다는 대학생 손모(21)씨는 “득표율이 낮다고 해서 권 전 후보가 내세운 가치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표하고 싶었다”며 “진보 성향 후보의 당선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느낀 권 전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찍어야 하는 상황이 씁쓸하고 미안해 후원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소정의 금액을 권 전 후보에게 후원했다는 직장인 최모(29)씨는 “(권 전 후보가)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혐오 정치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대선 후보 토론을 토론답게 만든 후보라고 판단해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했다.
전문가 "결선투표제 없는 상황에서 양극화 극심"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소수자 감수성이 가장 높은 집단이 2030 여성”이라며 “이번 대선에서 소수자를 가장 잘 대변하는 정당이 민주노동당이었기에 후원이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표를 보내는 방식으로는 지지하지 못하는 만큼 후원금 형식으로 지원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 결선 투표제가 없는 상황에서 진영 내 결집이 강해지다 보니 심정적으로 권 전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 이재명 대통령을 많이 찍은 것으로 보인다”며 “세대 내 젠더 갈등이 부각되는 가운데 이준석 전 개혁신당 후보를 향한 ‘이대남’ 표심에 대한 반작용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아미([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