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마켓·편의점 돌아다녀라"…'칼각 요리' 미쉐린3스타의 비결

2025-12-12

[세계 1등 식당의 비결] 도쿄 레스토랑 ‘세잔’

호텔 마루노우치에는 ‘편안한 럭셔리(relaxed luxury)’로 유명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드레 푸가 디자인한 레스토랑이 있다. 따뜻하고 편안한 아이보리·연분홍·하늘색 그리고 원목이 어우러진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넓은 창을 통해 자연광이 풍부하게 들어오고, 해가 지면 도쿄의 야경이 내려다 보인다. 여기는 도쿄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세잔(Sezanne)’이다.

2021년 7월에 문을 연 세잔은 6개월 만에 미쉐린 가이드에서 첫 별을 땄다. 바로 이듬해 2스타가 됐고, 2024년부터는 3스타의 영예를 이어 오고 있다. 2024년에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25년에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7위를 차지했다.

파인 다이닝에서 플레이팅이 주는 미적 경험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잔은 이러한 경험을 한층 강화시켜 세잔만의 특별함을 선보인다. 이는 세잔을 이끌고 있는 다니엘 캘버트 셰프가 ‘정확성·절제·의도’라는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세잔의 요리들은 여백의 미를 살린 우아함과 정교함이 특징이다. 첫눈에는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자세히 볼수록 프렌치 파인 다이닝의 감성과 일본의 미니멀한 우아함이 치밀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원칙은 단순히 접시 위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명이 함께 앉은 테이블에서 서비스하는 직원은 시간을 맞춰 같은 각도로 접시를 내려 놓으며, 그렇게 나온 요리들 역시 한치의 오차도 없다. 일행 중 다른 사람의 접시들과 비교해 봐도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한 듯 똑같다. 매 요리마다 모든 재료의 양과 모양, 심지어는 소스가 부어지는 각도까지도 똑같다. 이처럼 정교한 요리를 지속적으로 내기 위해 세잔의 직원들은 모든 작업이 몸에 자연스럽게 익을 때까지 연습한다고 한다.

캘버트 셰프는 16살 때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런던·뉴욕·파리·홍콩 등 다양한 도시들에서 일했다. 어느 도시에 있던 항상 최고가 되길 위해 노력했다는 그에게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홍콩에서 미쉐린 별을 받은 최연소 셰프’ ‘최초로 해외에서 미쉐린 3스타를 받은 영국 셰프’ 등이다.

그는 요리 외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밖으로 열심히 돌아다니기”를 꼽았다. 그곳이 어디든 새로운 요리를 접하는 일은 영감을 주고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캘버트 셰프가 익숙하면서도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이유다. 그의 모토는 “고전적 정통성을 기반으로 하되 지역적 영감으로 완성된” 요리다. 때문에 그는 “파인 다이닝도 즐기지만 시장, 수퍼마켓, 심지어 동네 편의점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게 많다”고 한다.

실제로 캘버트 셰프가 보고 배운 것들이 지금의 메뉴에도 반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야자키 망고와 쇼트브레드, 크렘 샹티이’는 세잔의 시그니처 디저트인데 첫눈에는 접시에 망고 반쪽을 올리고 그 위에 크림을 쌓은 듯 단순하게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망고는 물론이고 버터 함량이 높은 스코틀랜드의 전통 비스킷인 쇼트 브레드, 망고 소르베까지 쌓여 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망고 원물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게 쌓은 정교함이 캘버트만의 노하우다. 이 디저트는 캘버트 셰프가 시장에서 망고를 보고 레스토랑으로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캘버트 셰프는 “자신의 고향이 아닌 곳에서 요리를 하는 게 오히려 ‘빈 판(blank slate)’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며 “어떤 재료를 대할 때 보통 무엇이랑 먹어야 하고 어떻게 먹어야 한다는 제약에서 자유로워지면 훨씬 더 창의적인 요리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식에 기반을 두고 일본과 아시아에서 경험한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을 접목 시킨 그의 요리에는 재료 또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위의 망고도 그렇지만 전복·게 등 아시아에서 많이 먹는 재료를 재해석해서 만든 시그니처 요리들 또한 세잔만의 특별함이다. 프랑스에선 거위 간인 푸아그라로 만드는 파르페를 세잔에선 일본산 최고 품질의 전복 내장으로 만든다. 또한 일본 레스토랑 최초로 상하이 게와 화이트 트러플을 조합한 메뉴를 출시했는데, 이는 홍콩에서 상하이 게를 처음 접한 캘버트 셰프가 같은 시기에 나오는 화이트 트러플을 매치한 결과다. 그가 이 메뉴를 출시한 후 상하이·홍콩 등에서 이 두 재료를 이용한 메뉴를 내는 레스토랑들이 생겨났다.

세잔의 특별함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분명히 익숙한 재료를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담아낸 코스를 즐기다 보면 다음 요리에선 어떤 재료가 어떻게 요리돼 나올 지 계속 궁금해진다. 마지막 디저트에 이르면 단순히 맛있는 식사가 아닌, 하나의 완결된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최상의 식재료와 다양한 조리법을 접목 시키고, 숙련된 서비스와 흠잡을 곳 없는 플레이팅까지, 앞으로도 세잔에선 어디서도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갈 것이다.

김정아(Anica Kim) 더 헝그리 투어리스트 코리아 대표. 평양이 고향인 외할머니와 서울 토박이 할아버지로부터 한식의 다양함을 배웠다. 미국 뉴욕에서 자랐고 이후 교토·런던·도하·상하이·서울에서 생활하며 문화의 다양성을 체험하고 세계 미식과 사랑에 빠져 한식을 외국에 소개하며 국내외 F&B 현장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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