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의 작은 섬 아이기나는 제우스 신과 강의 님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아코스의 전설로 알려져 있다. 아이기나에 비극이 닥친 것은, 남편의 바람기에 넌덜머리가 난 헤라 여신에게 아이아코스의 친부가 알려진 탓이었다. 분노한 헤라는 역병을 내려 이 작은 섬을 초토화했고, 하루아침에 백성 없는 나라의 허울뿐인 왕이 되어버린 아이아코스는 아버지 제우스 신에게 엎드려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아무리 신의 왕이라도 이미 죽은 이들을 살려낼 방도는 없었다. 고민하던 제우스는 마침 눈에 띈 개미굴의 개미들을 모두 아이아코스의 백성으로 변신시켜 빈 땅을 채워주기에 이른다. 이후 아이기나섬의 사람들은 개미라는 뜻의 ‘뮈르미돈(myrmidon)’이라 불렸는데, 이들은 사람이 되었어도 여전히 개미 시절처럼 근면하고 성실하며, 국가에 충성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설화처럼 개미는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에도 나오듯 근면 성실의 대명사이다. 또한 ‘개미군단’이라 지칭될 때는 작지만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효율적인 집단이라는 뜻도 함께 가진다. 이는 생물학자들의 관찰로도 증명되었다.
먹이를 찾아 나선 개미 떼들의 귀갓길은 그야말로 잘 훈련된 군대의 행진과도 비슷하다. 이들은 각자 제 몸무게의 몇배씩이나 되는 무거운 먹이를 잘도 짊어진 채, 한눈팔지 않고 앞선 개미들의 뒤만을 부지런히 따라간다. 이들을 이끄는 것은 앞선 개미들이 분비한 페로몬 신호이다. 개미들은 주로 화학적 신호, 즉 냄새에 의해 외부 자극을 인식하기에 앞선 개미의 체취는 그 어떤 내비게이션 정보보다도 정확해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눈 밝은 과학자들은 이렇게 규칙을 잘 지키고 성실한 개미들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것도 알아낸다. 일부는 실수로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냄새 정보가 아니라 시각 정보에 의존해 새로운 경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미 집단의 규모나 크기에 상관없이 이런 ‘길치’ 혹은 ‘개척자’ 개미들의 비율은 5~15%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다수의 개미들이 따르는 길은 집으로 가는 것이 보장된 ‘확실한 길’이다. 하지만 이탈자 개미들의 앞에 놓인 길은 귀가가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한 길’이며,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위험한 길’이다. 확실한 길을 두고 미지의 경로로 나서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일정 비율의 개미들은 늘 이런 위험하고 불확실한 길로 들어서곤 한다.
이렇게 일탈한 개미들의 상당수는 예상대로 무사히 귀가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 중 아주 일부는 새로운 먹거리를 발견해 집단의 부를 늘리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더 빠르고 좋은 길을 찾아내 전체 루트를 개선하기도 한다.
개미 집단이 소수의 일탈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보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행동이 장기적 혹은 거시적으로는 집단의 생존력을 높이는 전략적 탐색이기 때문이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주말, 특별한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 행사장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뜨거웠다’. 하지만 이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무더위가 아니라, 단조로운 일상에 무디어진 열정을 되살리는 불씨에 가까워 오히려 기꺼운 뜨거움이었다.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이 주로 참여한 이 행사는 ‘비 더 퍼스트!(Be the First!)’라는 기치에 맞게, 미래에 지어질 달 기지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제안하는 자리였다. 달은 이미 1969년에 인류에게 첫 방문을 허락했지만, 이후로 반세기가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인류 거주불능 구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에 연구소를 세우고 거기에서 연구할 주제를 공모한다는 것은 지금의 시각에서는 현실적 제안이라기보다는 허구적 공상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선에 참여한 젊은 참가자들의 아이디어는 지극히 이상적이었으되, 그들이 내놓은 연구 제안서는 더없이 현실적이고 진지했다.
수상자 중, 고3 학생의 소감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처음에는 내신 수행평가를 위해 가볍게 생각해냈던 아이디어가 이 대회와 맞물리면서 점차 빠져들어 입시를 코앞에 둔 수험생임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에 몇개월을 매달렸다는 말에서 정해진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누군가의 모습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