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펜데믹을 지나면서 음식배달을 대표로 하는 퀵 배송시장은 연매출 4조원 이상의 규모로 성장했다. 거리를 누비는 배달 오토바이를 보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하지만 배송의 양적 성장 뒤엔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소음, 신호 위반, 이용자의 서비스 불만족도 등 사회적 문제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오토바이 일색의 배송 시장에서 최근 ‘자전거 메신저’가 주목받고 있다. 속도 경쟁에서 오토바이에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교통체증이 심한 도심과 근거리 배송에서는 속도에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소음과 안전 문제로 오토바이 출입을 제한하는 아파트 단지 등이 늘어나고 있지만, 자전거는 현관 앞까지 접근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더구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친환경 제품 사용 등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트랜드가 확산하면서 탄소배출 제로의 자전거 배송은 이런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착한 배송 서비스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 등에선 꽉 막힌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메신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퀵실버(1986)’나 ‘프리미엄 러쉬(2012)’ 등 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다. 한국에선 뚜렷한 계절 변화(무더운 여름과 눈 내리는 겨울)와 언덕이 많은 지형, 차량 중심의 교통 인프라 등의 한계로 '산업' 수준까지 성장하지 못했다. 일부 자전거 덕후(자덕)들이 개인적으로 오토바이 배송 시장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지만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의 자전거 수송 분담률은 1.43%로 네덜란드 36%, 일본 17%에 한참 뒤처지는 수준이다.

커지는 배송 시장과 더해지는 심각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자전거 메신저 사업의 필요성을 고민하던 두 명의 자덕이 의기투합해 지난 1월 친환경 배송 서비스 ‘그리디(GRIDY)’를 창업했다. 김의호(33) 공동대표는 일본 유학 시절 약 3년 동안 도쿄에서 자전거 메신저로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실제 배송 서비스 구조와 커뮤니티 문화 구축을, 강송규(58) 공동대표는 제일기획 광고디자이너 출신으로 IT업계에서 다섯 차례 창업했던 경험을 살려 시스템 개발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둘 다 자전거 경력 15년 이상의 ‘찐 자덕’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디의 핵심 키워드는 ‘친환경’이다. 단순히 물건을 배송한다는 개념에 더해 지구를 살린다는 ‘환경적 가치’를 부여한다. 배송 신청을 하는 방식은 일반 배달 플랫폼과 비슷하지만, 배송에 따른 탄소 절감 수치를 고객에게 리워드로 적립해주고, 이를 SNS를 통해 전파하도록 유도한다. 이것은 자발적 바이럴 마케팅으로도 연결되는 동시에 브랜드 가치 또한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리디는 자덕이 중심이 된 서비스인 만큼 물품을 배달만 하는 단순 배송원이 아닌 자전거 메신저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키워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제시한다. 동네 1~2㎞ 이내 배송을 담당하는 ‘비기너’부터 10㎞ 이상 장거리 배송이 가능한 ‘엘리트’까지 6단계 등급으로 나눠 메신저들에게 참여 동기를 부여한다. 메신저의 역할과 고객 응대 방식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메신저들이 참여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즐거운 배송 문화를 만들 계획이다. 특히 다른 배송 서비스에는 없는 '기부배송' 제도를 도입했다. 기부배송이란 가령 배송 10건을 할 경우, 그 중 1건은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 배달이나 저소득층 아이들의 급식 배송 등 공익적 배송에 참여하는 것으로 메신저들의 자부심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8월 약 3주 간의 시범서비스를 진행한 그리디는 내년 2월부터 본격 서비스를 시작한다. 우선 서울 도심인 종로구,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 마포구에서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뒤, 점차 지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상대적으로 배송을 꺼리는 단거리 배송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이미 이 지역에 활동할 메신저 30여 명도 확보했다. 기본적으로 그리디는 당근마켓처럼 동네 배송을 지향한다. 같은 지역 거주민이 그 지역을 가장 잘 알 뿐더러, 동네 이웃으로서 고객의 신뢰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송 가격은 거리와 화물 유형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인 오토바이 퀵 배송과 비슷한 6000원~1만6000원 대로 책정했다.

그리디는 점차 사업 영역을 넓혀 자전거 배송 전국망을 갖추고, ESG 마케팅을 통해 친환경 기업·지자체와 제휴를 맺고 탄소배출권 거래, 친환경 물류 시스템 구축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더 나아가 그리디 서비스의 플랫폼, 이른바 ‘K-메신저’의 해외 진출도 꿈꾸고 있다. 특히 1.43%에 머물러 있는 자전거 수송 분담률을 2030년까지 3%대로 높이는 것이 목표다.


지난 8일 서울 남산에서 그리디 서비스에 참여할 자전거 메신저들을 만났다. 현재 각기 다른 플랫폼에서 자전거를 이용한 배송을 하는 이들은 자전거 전용 메신저 서비스의 등장에 기대가 컸다.
이해인(32)씨는 “(그리디 앱에) 내가 배송을 통해 얼마만큼 탄소배출을 줄였는지 보여주는 메뉴가 있다. 그런 걸 보면서 단순한 배달이 아닌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든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자전거 메신저 경험이 있는 쥴 미쇼(30)는 “캐나다에서는 레저뿐 아니라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타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데 한국은 도로 주행시 위험한 요소가 많다. 하지만 자전거 타는 게 좋아서 이 일을 한다”며 웃었다.

지난 2016년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조기 은퇴한 A(58)씨는 “퇴직 후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자전거를 타면서 잠을 잘 자게 됐다. 자전거 메신저 활동은 회사처럼 사람들 관계에 신경 쓰지 않아 자유롭고 좋다”며, “한 마디로 육체 건강과 정신 건강에 모두 좋다”고 말했다.
아직 한국 도심에서 자전거 타기가 쉽지만은 않다. 자동차 운전자들의 인식과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머잖아 자전거 메신저들이 늘어나 도시를 누비고 다닌다면 탄소 절감을 통한 기후위기 해소는 물론 자전거 이용자들이 도로를 마음껏 누빌 수 있는 인프라 확충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가 된다.

작가 김훈은 『자전거여행』에 이렇게 썼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자전거는)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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