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장입니다.”
다국적 기업 본사의 외국인 리더가 국내에 신제품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다. 국내 소비자의 최첨단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고, 눈높이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라 글로벌 시장의 시금석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성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글로벌 시장에 앞서 국내 시장에 신제품을 출시하는 외국계 기업조차 한국 지사나 리더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로보락은 한국지사장이 없다. 다이슨은 내부 정책에 따라 다이슨코리아 대표가 국내 시장 전략을 발표하지 않는다. 미국 청소기 기업 비쎌은 한국지사장을 4개월 전 선임했지만 국내 시장 진출을 알리는 자리에서 아시아 총괄이 한국 시장 전략을 소개했다. 한국 리더의 역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정 권역을 총괄하는 사람은 여러 국가를 다닐 수 밖에 없다. 한국에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신속하고 시의적절한 국내 시장 대응에 분명 한계가 있다. 외국계 기업의 국내 고용 창출과 투자가 부족한 것도, 고객과의 교감이 아쉬운 것도 한국 리더가 부재하거나, 역할이 제한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외국계 기업의 한국 시장 진출은 국내 소비자의 선택지를 넓힌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국내 리더가 없거나 역할을 제한한 것은 국내 시장을 책임감 있게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 부족으로 해석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외국계 기업과 한국 소비자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한국 대표'가 필요하다. 국내에 상주하며 국내 시장 상황을 면밀히 조망하고 소비자 니즈를 본사에 전달, 빠르게 반영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조직의 방향성은 리더에 따라 좌우된다. 한국이 중요하다는 말이 더이상 헛헛하게 들리지 않으려면 한국 리더 선임 뿐만 아니라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신영 기자 spicyzer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