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화합물’로 불리며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알려진 과불화화합물(PFAS)에 대한 정부 규제가 선진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느슨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들이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서둘러 기준이나 규제를 강화할 계획이 없는 상태다. 그 사이 한국인의 PFAS 체내 농도는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2018~2024년 수돗물 중 과불화화합물 측정 결과’ 자료를 보면 전국 정수장 수돗물의 과불화옥탄술폰산(PFOS)과 과불화옥탄산(PFOA) 등 과불화화합물 농도가 미국의 강화된 기준치인 4ppt(농도의 단위, 1ℓ당 나노그램·1조분의 1)를 넘어선 횟수가 7년간 252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과불화화합물은 자연 상태에서 극히 안정적인 난분해성 물질이어서 ‘영원한 화합물’ ‘좀비 발암물질’ 등으로 불리는 오염물질이다. 세계 각국이 과불화화합물의 추가 배출을 금지하고 있지만 과거에 배출된 이 물질이 여전히 분해되지 않은 채 자연환경 및 인체에서 검출되고 있다. PFAS 노출로 인한 건강 악영향은 불임, 발달 지연, 암 위험 증가, 면역 결핍, 비만 위험 증가 등이 있다.

시민들 체내 PFOA 농도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중고생의 경우 2018~2020년 국민환경보건 기초조사에서 3.66㎍/ℓ였던 것이 2021~2023년 조사에서는 3.93㎍/ℓ으로 7.4% 늘어났다. 또 성인에서는 같은 기간 6.43㎍/ℓ에서 6.81㎍/ℓ로 약 5.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이 같은 수치는 미국 성인의 3배, 중고생은 미국 중고생의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전문가나 환경단체들이 국내 농도를 미국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국내 기준치가 지나치게 느슨하게 설정돼 있어 유효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 기준치는 PFOS와 PFOA를 합해 70ppt가 넘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국내 정수장에선 이 같은 수치를 넘어선 농도는 관찰되고 있지 않다.
반면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지난해 4월 이 물질의 기준치를 각각 4ppt로 강화하고, 2027년까지 전체 수도시스템에서 모니터링을 실시하도록 했다. 유럽연합의 경우 전체 1만종가량인 PFAS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하는 동시에 PFAS 중 20개 물질의 합이 100ppt가 되도록 하는 기준을 내년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유럽연합의 법안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포괄적인 규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하수에서 과불화화합물이 기준치를 크게 넘어선 사례도 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2022년 서울 소재 유출지하수 140개 지점에서 이 물질 농도를 분석한 결과 PFOS와 PFOA를 합해 14곳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럽 등이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정부는 소극적이다. 환경부는 김태선 의원실 질의에 “과불화화합물이 환경 및 인체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인식 중”이라면서도 “현재까지 국내에서 수돗물 과불화화합물로 인한 수질감시 기준 초과 및 인체영향 문제는 확인된 바 없다”고 답했다. 환경부는 이어 “지난해 10월 시작된 ‘먹는물 과불화화합물 대응전략 수립’ 연구를 통해 대응계획을 수립하고, 국내 수질감시 기준의 적정성, 위해성 등을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선 의원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체내 과불화화합물(PFAS) 농도가 미국인의 3배에 달하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안일한 태도로 국민 안전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선진국 수준의 안전 기준 강화와 정수장 전수조사 의무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