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눈앞에 앞두고 빚 탕감을 앞세운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코로나19 때 공급된 정책자금 대출 가운데 장기 연체된 채권을 배드뱅크 방식으로 탕감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새출발기금과 같은 소상공인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정치권의 인심은 후하다. 문제는 관대한 공약들이 금융시장에 던지는 신호다. 금융은 단순한 돈의 흐름이 아니다. 금융의 기본은 신뢰다. “빌린 돈은 갚는다”는 신뢰와 책임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정치권이 앞장서 질서를 흔들면 금융시장의 논리 역시 위태로워진다.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는 책임 없는 기대와 의존만 남는다. 정치권의 상습적인 탕감 확대 구호는 상환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한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올 여지가 크다. 이미 상환한 차주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시장 왜곡과 도덕적 해이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차별적 탕감은 사회 유지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신뢰의 상식을 무너뜨린다. 포퓰리즘은 도덕적 해이를 낳고 이는 사회적 신뢰에도 부정적이다.
득표를 위한 정치권의 탕감 논리는 오히려 금융소비자들의 이익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금융사 입장에서는 일반 대출에서도 상환 리스크를 더 크게 반영할 유인이 생긴다. 금융사들은 정치권의 무차별적인 탕감이 또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앞으로 대출을 신중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금융소비자가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시장 왜곡을 부른다.
정치권은 국민에게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건네고 있다. 표를 얻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정작 한국 경제의 핵심인 신뢰에 대한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금융은 생색을 내는 수단이 아니다. 채무 조정은 제도 안에서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필요한 대상에게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치권의 공약이 성실하게 빚을 갚는 국민들에게 박탈감을 줘서는 안 된다. 정치권은 지금까지 약속·신용·성실이라는 말을 가볍게 여기면서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